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대립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고인의 유지를 받들자는 다짐도 하고 있어 화합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도 큽니다. 따라서 언론이 이런 모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 두 번의 모임만을 가지고 정치권에서 화해와 통합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고까지 보도하는 것은 성급한 태도입니다. SBS 뉴스에서 이와 같은 사례들을 봅니다.
SBS 8시뉴스는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정치권에 화해의 봄기운이 찾아오고 있다고 유난히 강조했습니다. 뉴스는 20일 김 전 대통령 서거정국을 통해 동서로, 남북으로 나뉘어 지속돼온 갈등을 씻어내자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으며, 화합해 보자는 분위기가 번져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고인의 국장이 치러진 지난 23일 뉴스는 화해무드의 결정판을 보여주었습니다. 악연도, 애증도 눈 녹듯 사라지고, 여와 야, 진보와 보수, 그리고 남과 북이 한 목소리로 고인을 애도하면서 평소 고인이 역설해 온 국민 통합의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치권의 봄소식은 화해와 통합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낭보입니다. 그러나 뉴스가 전한 구체적인 사례는 너무 빈약했습니다. 마치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따뜻한 봄바람은 느낄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SBS 뉴스에 따르면, 봄소식을 가져 온 사례, 곧 봄의 전령들은 DJ의 병실을 찾은 YS의 '화해선언',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정치인들이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함께 조문객을 맞은 것, 민주당이 주최한 추모 예배에 김형오 국회의장이 참석한 것, 그리고 화해를 강조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말입니다.
SBS 뉴스는 YS의 화해선언을 '두 전직 대통령의 극적인 화해'라고 규정했지만, 사실은 일방적인 선언의 성격이 강합니다. 더욱이 뉴스는 이것이 작게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다시 손을 맞잡는 촉매제가 됐고, 나아가 영·호남 지역 분열을 앞장서 극복하자는 결의로 이어졌다고 보도했지만, 화해선언 하나가 이처럼 극적인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함께 조문객을 맞은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행사는 과거 YS와 DJ가 함께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 이름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여야로 나뉘어져 있는 정파의 화합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화합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김형오 의장의 추모예배 참석에 정치적 의미를 굳이 붙인다면, 조문정국을 국회정상화의 계기로 만들어 보고 싶은 여당 쪽의 희망이 담겼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여야가 없다. 여야가 하나가 돼 민족적 국가적 과업을 위해 모두 손잡고 나가야 한다."는 박희태 대표의 말은 여당의 희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했을 뿐, 정치적인 의미를 붙일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SBS 뉴스가 최근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말과 행동들에 대해 화해와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너무 앞서 가지는 말기 바랍니다. 막연한 희망과 기대에 따른 장밋빛 전망보다는 철저한 현실분석 위에서 끌어내는 희망의 싹이 더 소중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뉴스가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SBS 뉴스의 김 전 대통령 서거관련 보도에서는 사실관계의 착오가 있습니다. 지난 23일 뉴스에서 그 사례를 찾아봅니다. ‘3김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뉴스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른바 DJ, YS, JP라는 영어약자로 불리며 1960년대부터 한국정치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80년 대 중반 JP가 집권당 후보에 맞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 전까지는 ‘3김’이 아니라 DJ와 YS가 한국정치의 상징적 존재였던 '양김 시대'였습니다. 당시 언론들이 DJ, YS와는 성격이 다른 JP까지 넣어 '3김 시대'라는 말을 억지로 쓰기 시작했지만, '3김 시대'라는 시대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나로호 발사가 실패냐, 절반의 성공이냐 하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언론보도들을 종합해보면, 국제적으로는 '실패'로 평가되었고, 러시아 쪽은 '성공'이라고, 그리고 우리 정부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서로 다른 평가는 각자의 입장 차이에서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성을 제 궤도에 올려놓지 못했다는 점에서 냉정하게 보면 실패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적은데다 경쟁심까지 작용했을 법한 제 3국들은 망설임 없이 실패라고 부를 만합니다. 반면에 1단계 추진 로켓을 우리에게 판매한 러시아는 위성의 궤도진입 실패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성공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절반의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왜 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러시아와의 빡빡한 책임공방에 대비하려면 '실패'로 규정 할만도 한데, '절반의 성공'이라면 1단계 로켓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서둘러 시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은 결국 대국민용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은 과학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나로호를 발사하기 전 SBS 뉴스는 2단 로켓과 위성의 분리가 이뤄질 때 '발사체의 성공'이라고 부르며, 전 과정의 성공은 위성이 안착했을 때 판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의 용어사용은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는 우주개발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