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강인한 정치인 이었습니다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친근하고 소탈한 인물이었습니다.
남승모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사형 판결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사형수로 수감돼 있던 그해 12월, 김 전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세 아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 같아 미안하다며 가슴 속에 묻어뒀던 부정을 편지에 담아 보냈습니다.
그런 마음을 아는 가족들도 힘든 내색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희호 여사 (지난 1997년) : 저는요, 남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단 한 번도 바가지를 긁은 일이 없어요.]
김 전 대통령은 아랫 사람들에게도 엄한 스승이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인생의 선배였습니다.
[권노갑/민주당 상임고문 : 한 번 목표를 세웠으면은 끝까지 달성을 해라 그런 뜻에서 잊지말고 이 만년필을 몸에 항상 지니고 다녀라 그것을 제가 항상 가지고 다니고 있어요.]
자신도 오랜 옥살이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갓 출옥한 이재오 전 의원에게 고문 후유증에 좋다는 웅담을 건넨 사람도 김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이재오/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 고문 당한 것이 좀 쉽게 풀리니깐, 이걸 갖고 가라고, 고문을 여러번 당해서 이걸 내가 꼭 주려고.]
영화 서편제를 통해 맺은 인연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이 주례까지 섰던 영화 배우 오정해 씨는 김 전 대통령을 '나눔의 정치인'으로 기억합니다.
[오정해/영화배우 : 작은거나 큰거나 무조건 나누세요. 함께 나누시고, 그 사람들 한 분 한 분 이름까지도 다 알고 계시고.]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그를 현대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소탈함을 잃지 않았던 큰 어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