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월E]에서처럼 이 영화도 초반 도입부는 대사 없이 화면과 음악만으로 진행하는데, [월E]에서는 황량한 미래의 지구에서 절대 고독을 느끼는 작은 로봇에 관객이 120%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을 부리더니 [업]에서는 주인공 칼과 엘리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 결혼, 황혼까지의 전 생애에 걸친,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가슴 아프고 씁쓸한 사랑과 인생을 펼쳐놓습니다. 마치 자신만만한 프로그램을 갖춘 마법사가 쇼의 서막을 알리는 것 같았습니다.
칼과 엘리는 탐험 영웅 찰스 먼츠를 동경하며 남미의 신비한 폭포 위에 집을 짓고 살겠다며 모험심에 불탔지만 현실에서는 도시의 동물원에서 가이드와 풍선 장수로 늙어갑니다. 어느 날 엘리가 그만 숨을 거두고 78살의 칼은 홀로 집을 지키며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데 집 주변에 개발 사업이 착수됩니다. 이 고집불통 노인은 엘리와 추억이 깃든 집을 절대 팔 수 없다며 알박기(?)를 시도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로원에 가야할 처지가 되자 칼은 헬륨 풍선 2만여 개를 매달아 집을 하늘에 띄워 남미 어딘가에 있는 신비의 폭포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만 여기에 소년 러셀이 합류하고 폭포 근처에 도착하는데 거기서 신비롭게 아름답지만 약간 멍청해 보이는 희귀새 캐빈과 말하는 목걸이를 찬 개 더그를 만나며(러셀은 새와 더그를 보자마자 함께 데리고 가겠다고 떼를 씁니다. 으~. 아이들이란...) 또 다른 스테이지의 모험에 빠져듭니다.
고집불통 완고한 노인과 철없지만 순수한 아이가 만나 서로가 서서히 변화한다는 전개 형식과 어린 엘리부터 희귀새 캐빈, 마음 좋은 개 더그, 악당 개들까지 모두다 등장에서부터 퇴장까지 멋지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깜짝 등장해 간결하게 캐릭터를 설명해주고 특성에 맞는 재치 있는 대사와 행동이 멋져 불필요한 캐릭터는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깔깔거리게 만드는 웃음과 재미, 코끝 찡한 처량함과 감동,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는 긴장을 주는 액션, 거기에 작품의 격을 높여주는 성찰까지 살짝 숨겨놓는 센스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적절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기분 좋은 포만감을 맛보게 해줍니다.
어른이 봐도 유치하지 않고,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는 이런 능력은 마법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어른용 작품에 유치한 구석이 발견되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췄다고 자부하는 작품에 아이들이 구리다며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픽사 직원들은 정말 신 내림이라도 받은 걸까요?
결국 칼과 엘리에게 신비의 폭포라는 것은 일종의 맥거핀인 셈인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나 모험을 나서는 칼이나 신비의 폭포 같은 장단기 맥거핀을 설정해놓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노력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신비의 폭포를 향해 떠나는 여정에서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만나며 깨달음을 얻고,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인생 공부를 해나가는 것이겠죠. 인생과 모험, 둘 다 앞으로 무엇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 아니냐고 슬쩍 떠보는 것 같아요.
*공만 보면 환장하는 개의 습성이 두어 번 등장하는데요. 비행선에서 칼을 공격하려다 테니스공에 홀려 잠깐 임무를 망각했다가 상황 파악이 된 점박이 개의 처연한 표정연기가 압권입니다.** 영화 앞에 소개되는 단편영화도 참 좋습니다. 구름을 의인화 했는데 코가 뭉툭한 모습이 정겨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