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치고 49재가 진행된 봉하마을은 하루종일 쨍쨍한 해가 내리쬈습니다.
그야 말로 뙤약볕..
하루 전에 도착한 기자들의 우산은 어느 새 양산이 됐고 태양을 피하느라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9시부터 시작된 49재와 12시부터 진행되는 안장식을 취재하기 위해 봉하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약 8시 10분쯤.
하지만 저희들이 도착하기전부터 이미 많은 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행사 준비도 분주했습니다.
정토원에서 종교행사를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정오가 되자 안장식장에 도착했고 안장식은 참으로 차분한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추모영상이 상영될 때 참석자들은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안장식을 마친 한명숙 전 총리는 "대통령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깊은 슬픔을 대통령과 함께 봉화산 자락에 묻었다" 면서 "이제 슬픔도, 미안함도, 원망도 모두 내려놓읍시다.
대통령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마지막 부탁이었습니다. 이제 대통령님의 남기신 뜻을 받들어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다시 출발합시다" 라고 담담하게 국민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개인적인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한 안희정 최고위원은 기자들에게 "49일 동안 예쁘게 생각해 주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조만간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라는 짧은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렇게 49일 간의 공식 장례일정은 마무리 됐습니다.
그러자, 아니 훨씬 전부터 정치권에는 이른바 친노 인사들의 정치세력화가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고 일부에서는 실명을 거론하며 10월 재보선 출마 혹은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예상하기도 합니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아직은 성급한 논의 같습니다.
실제로 만나본 친노 정치인들은 사실 아직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어 보입니다. 또 그런 생각이 있더라도 지금은 조직화할 시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선거는 멀리 남았고 그들에게 노 전 대통령을 보내는 건 지금 할 일이었으니까요.
장례 일정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런 논의 자체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인식, 서거정국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는 비판도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지자들에게나 상대편에게나 모두 논란의 대상이 될만한 일입니다. 선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논의이고 바람은 선거 한달 전쯤에 일으켜도 충분합니다.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진 않지만, 퇴임후 노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보고 취재했던 기자로서 또 노 전 대통령이 불편하게 느꼈을 법한 질문도 한두번 던졌던 기자로서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뭔가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게 또 다시 정당, 선거처럼 꽉 짜여진 정치 구도의 틀로만 해석돼야 하는 진부함.
더욱이 그것이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됐다는 데서 오는 섬뜩하기까지 한 현실정치의 비정함.
한편으론 유러피안 드림의 애독자이자 한미 FTA를 이끌었던 지도자로서 한 EU FTA는 어떻게 보는지,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될 당시 대통령으로서 2년 뒤 벌어진 비정규직법 논란에 대한 의견은 어떤지.. 이런 것들을 이젠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 같은 것들이 덧칠해졌습니다.
태양이 작열하던 봉하마을에서 사람들의 얼굴에 흐르던 땀을 식혀준 건 간간이 불어온 참으로 시원한 바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시골이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바람이 불 수 있느냐며 어떤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49재 추모 영상의 마지막 장면은 자전거를 타고 푸른 벌판을 신나게 달리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었습니다. 청문회장에서 호통치는 모습보다는, 또 어느 유세장에서 대중에게 호소하는 모습보다는, 또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모습보다는, 자유롭고 평화롭게, 바람처럼 들판을 달리는 모습이 마지막이어서 참 좋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편집자주] '차디찬 세상이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김호선 기자는 2001년 공채로 입사해 지금은 정치부 정당팀에서 맹활약 중입니다. 회식 자리에선 재치있는 성대모사로 동료들을 웃기는 김 기자는 모닝와이드 '국제뉴스'로 시청자들을 만나기도 했고, 사회부 시절에는 명문 사립대들의 '내신 무시' 입시 관행을 특종보도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