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논란이 되더라도 하루만 잘 버티면 된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중도 사퇴를 둘러싸고 검찰 내에서 '때 늦은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검증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청와대도 문제지만, 검찰의 안일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21일,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내정된 직후만 해도 검찰은 천 후보자의 총장 임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003년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낙마'한 사례가 없는 데다, 별도의 국회 표결이나 동의가 필요 없이 청문회만 치르면 되는 제도적 특성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논란이 되더라도 하루만 잘 버티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검찰은 오히려 국회 상황을 걱정했습니다. 당시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으로 민주당이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던 때입니다. 다시 말해 '인사청문회 준비를 잔뜩했다가 청문회가 열리지 않으면 헛수고한 셈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후 민주당이 청문회 참여 의사를 밝히고, 일부 언론을 통해 천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하나 둘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도 검찰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 일선 검사는 "검찰에 비판적인 언론 몇 군데가 의혹을 보도하더라도, 다른 메이저 언론사가 후속 보도를 하지 않는 한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봤던 것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국회에서의 천 후보자의 답변 태도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의혹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 잘 하겠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놓고는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비롯한 검찰 참모진이 '국회의원들과 싸워봤자 이득이 없다, 오히려 침착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자'는 식의 잘못된 조언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 '설마 이정도 일줄이야..' 참모진도 몰라
청문회를 지켜본 검사들은 가장 큰 문제로, '인사청문회 준비단 등 참모진조차 천 후보자의 의혹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다'고 지적합니다. 일선 검사들은 청문회에서 예기치 못했던 의혹이나 질문이 나오자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과 함께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 동안 준비단이 뭐 했느냐'는 날선 비판이 따라붙었습니다.
실제로, 인사청문회 준비단에 있던 한 검찰 간부는 청문회 이튿날 기자실에 내려와 의혹들을 해명하려다가 쏟아지는 질문에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후보자에게 다시 물어보겠다'는 답변을 반복하고 돌아갔습니다.
또, 청문회에서 천 후보자가 '힘 없이' 시인했던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천 후보자의 아들이 방배동의 한 고등학교를 더 이상 다니기 어려운 사정이 생겨 여의도로 전입했지만, 여기서도 적응하지 못 해 한달도 채 안 돼 압구정동으로 주소를 이전했다'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했습니다. 혹을 떼려다 오히려 붙이고 간 셈입니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천 후보자 본인에게 있다고 검사들은 털어놓습니다. 한 검사는 "여러 모로 볼 때 천 후보자는 아직 총장이 될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기회가 중요하지만 다음 기회를 도모하면서 이번에는 총장직을 고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편집자주] 2003년 신문기자로 시작해 2007년 SBS에 입사한 김지성 기자는 사회2부 법조팀에서 검찰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뚝심있고 끈질긴 기자정신으로 현장을 누비는 김 기자는 정치부에서도 활약했으며, 2003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겨놓은 비자금'과 관련한 특종보도로 큰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