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화정책을 책임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내년 1월 말로 4년 임기가 만료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서는 앞으로 수개월 내에 버냉키 의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입장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버냉키 의장의 연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 내 여론이 50대 50으로 팽팽히 갈렸으나 최근 들어서는 연임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양상이다.
미국 온라인 트레이딩 사이트인 인트레이드닷컴(Intrade.com)에 따르면 버냉키 의장의 연임 가능성을 점치는 네티즌은 60% 정도에 이른다.
이처럼 버냉키 의장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는 있으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버냉키 의장을 바라보는 미국 내 여론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오바마가 대통령 당선자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자신이 이끌고 갈 경제팀 인선을 발표하면서 유능하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인물들이라고 한껏 자랑했지만 버냉키 의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바마가 버냉키 의장을 임기 만료와 함께 새 인물로 갈아치울 것이라는 관측이 강력하게 대두됐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FRB 의장이었다는 책임론이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더했다.
래리 서머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후임이 될 것이라는 하마평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류는 최근 한두달 사이에 상당부분 누그러지면서 저울의 추가 연임 쪽으로 점차 기울어가는 형국이다.
만약 버냉키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일등 공신은 경기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금융위기 발발 이후 정책금리를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파르게 인하해 작년 12월에는 제로(0) 수준으로 낮췄으며, 제로금리에 이어 양적 완화 정책까지 동원, 통화량을 1조달러 이상 추가로 공급함에 따라 FRB의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상태다.
이러한 조치가 효과를 발휘한 탓인지, 경기위축의 속도가 현저하게 둔화되고 침체가 곧 끝나고 바닥을 탈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비록 금융위기가 초래될 때 FRB의 의장이었지만 불을 끄기 위해 발벗고 나선 인물도 FRB의장이라는 점을 오바마가 높이 평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허술한 규제.감독 시스템을 혁신하면서 오바마가 FRB에 강력한 감독기능을 부여키로 한 점도 버냉키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의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금융감독시스템 개혁안은 FRB에 대해 일반은행과 금융지주회사는 물론 비(非)은행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기능까지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최근 버냉키 의장이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가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메릴린치 인수 과정에 무리한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을 받았으나,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버냉키 의장의 업무수행 능력을 신뢰한다는 입장을 직접 표명하기도 했다.
버냉키의 연임을 점치게 하는 또 한가지의 요소는 그를 대체할 인물로 거론되던 서머스 NEC위원장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집이 강하고 다른 브레인들과 심심찮게 불협화음을 빚고 있는 서머스 위원장을 새 FRB 의장에 임명할 경우 의회 인준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버냉키 카드를 그대로 밀고 나가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버냉키가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정책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한 오바마가 버냉키를 갈아치우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회의에서 적어도 연내에는 금리인상이 없을 것이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으며, 이러한 메시지에는 자신의 연임을 고려한 정치적 포석도 담고 있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