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들떠있었습니다. 그것 역시 의외였지요. 진짜 무슨 일일까?
가벼운 흥분 속에 근황을 교환하는 가벼운 대화가 끝나자 선생은 8월 미국에서 열리는 폴 앵카의 자선행사에서 전시도 하고 현장에서 즉석 그림도 그리게 됐노라고 전했습니다. 또 런던의 한 화상이 그림 10점을 보내달라고 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SBS8뉴스에 '人터뷰' 코너에서 소개된 뒤 일들이 아주 잘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선생이 인정받는 게 뉴스 때문이랴 싶으면서도 속으로는 싫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지난 3월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가 무용가 홍승엽씨가 제게 메일을 보내 백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날 선생에게 전해 들으니 평창동 토탈 미술관에서 홍승엽씨는 춤을 추고 선생은 즉석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셨더군요.
저는 정말 우연찮게 정말 '아트'를 아시는 분들끼리 교접을 성사시킨 매치 메이커가 된 거고요.
백성민 선생을 알게 된 것은 2007년 10월 어느 날입니다. 책 담당 기자인 저는 늘 그렇듯이 한 편으로는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 차 또 한 편으로는 심드렁하게 자리에 잔뜩 쌓여있는 책 봉투들을 뜯었내려갔습니다.
어라, 웬 만화책이 다 왔네. 그런데 '광대의 노래'라는 제목의 이 만화책을 저는 단숨에 끝까지 읽어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만화책이 아니었습니다. 만화도 회화도 아닌 그림.
그 어떤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생전 처음 보는 붓 그림들이 책에서 막 튀어나올 듯이 생동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의 터치로 완성하는 선들의 약동에서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한국에 이런 만화가가 있었다니…… 이 분을 만나야겠다. 나 혼자만 이런 그림을 볼 게 아니라 뉴스에 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야겠다….
만화가 백성민. 그러나 선생을 만나 정식으로 인터뷰하기까지는 무려 1년 반이 걸렸습니다. 지상파 뉴스는 내부의 게이트키핑 과정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선생의 인지도가 비슷한 세대인 허영만, 이현세 선생 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도 있고, 여러가지 상황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는 한번 꼭 뉴스에서 다루리라고 생각하고 선생의 책을 책상 서랍 속에 간직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되긴 되더군요.
지난 3월 드디어 저는 살짝 긴장한 채로 선생에게 섭외 전화를 넣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은 뭐 나 같은 사람을 다룰 일이 있습니까. 했지만 거듭된 제 요청에 그럼 오세요. 뉴스 나오면 어머니와 누이는 좋아할 겁니다. 라고 허락했습니다.
(계속)
[편집자주] 날카로운 문화적 감각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인상깊은 칼럼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주형 기자는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SBS스페셜 등 호흡이 긴 기사와 방송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