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한국 정치에 '화이부동' 던지고 떠난 조세형


구글 선호 소스에 SBS뉴스 추가

조세형(趙世衡) 전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이 17일 정쟁으로 바람 잘 날 없는 한국 정치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화두를 던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조 전 대행은 엄혹했던 유신 말기에 오랜 언론인 생활을 마감하고 정계에 입문, 이날 타계할 때까지 한국정치의 중심과 주변을 오가며 큰 족적을 아로새긴 합리적 인물이었다.

합동통신 정치부 기자와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을 거쳐 편집국장으로 있던 78년 10대 총선 때 이철승 신민당 대표에게 발탁, 서울 성북에 출마해 당시 전국 최다득표 당선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정가에 발을 디뎠다.

86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상임운영위원을 거쳐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평민당 후보의 선거부위원장으로 활약했으며 88년과 92년 13, 14대 총선 때 서울 성동을에 내리 당선되며 야당의 핵심부에 자리잡았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광고
광고 영역

조 전 대행은 30년 넘게 현실정치에 몸담는 동안 좌우명인 화이부동(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을 실천한 몇 안되는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DJ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96년부터 3년간 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을 지내면서 야당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했고, 97년 대선 때는 DJP 공조를 이끌어내 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의 토대를 닦은 숨은 주역이었다.

98년 DJ의 권유에 따라 텃밭인 성동 지역구를 포기하고 광명을 보선에 출마, 한나라당 전재희 후보를 꺾고 4선 고지에 올랐으나 99년 4월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행직에서 물러났다.

16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에게 고배를 들었지만 2001년 12월 DJ에 의해 주일 대사로 발탁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까지 4강외교 무대에서 활약했다.

대사직에서 물러난 뒤 원로정치인으로서 여당에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학업에 전념해오다 2007년 대선 때 전주고 후배인 정동영 민주당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별세하기 전까지 현실정치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조 전 대행은 TV 정치토론의 단골손님으로 출연해 특유의 정연한 논리와 언변으로 상대를 압도했던 당대의 논객이기도 했다.

특히 해박한 지식을 지녀 '1980년대-한국과 미국' '힘의 정치, 민주의 정치' '21세기 한국발전전략'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