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옆 곳곳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무전에서도 환호성이 들린다. 티벳 쪽에서 오르는 외국 원정대로 보이는데 우리랑 주파수가 겹치는지 그동안 교신 내용을 꾸준히 들려준 팀이었다.
정상인지 너무도 행복한 목소리들이었다.
아직 우리는 하루가 더 남았다. 긴긴 하루가 되겠지.
19일 오후 변수가 생겼다.
이번 원정의 최대 난관은 8,600미터 지점의 절벽이었다.
2차 정상도전에 나서기 전날, 동민이형은 인터뷰에서 8,600미터엔 높이 60미터, 경사 약 70도의 절벽이 하나 있는데 이걸 넘는게 최대 관건이라고 했다.
이걸 넘어서면 에베레스트 서쪽 능선에 오르는데 정상까지 쭉 능선을 타고 간다는 거다.
문제는 이곳이 원정대가 처음 가보는 곳이란거다.
첫번째 절벽을 넘어서 정상까지 가는 능선이 얼마나 험한지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원정대는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19일 이 길을 정찰나갔던 동민이형은 당초 예상보다 길이 더 험하고 거리도 멀다며 올라가기 위해선 더 많은 장비가 필요할 것 같다고 전해왔다.
박 대장은 고심에 빠졌다.
원정대가 들고 올라간 장비보다 더 많은 장비가 필요한데, 베이스캠프에서 장비들을 올리려면 이틀은 걸린다.
갖고 올라간 산소통도 모자라고, 결정적으로 8,500미터에서 그렇게 오래 머물면 대원들의 체력도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일반적으론 8,500미터에선 사흘 이상은 머물지 않는다고 한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원정대는 작전회의를 가졌다. 여기서 물러서면 사실상 올해 봄 시즌 도전은 힘들어진다. 더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18시 30분쯤...
30여분 가까이 회의를 마친 원정대는 결연한 무전을 보내왔다.
올라가다 장비가 모자라면 맨손 암벽등반을 해서라도 넘어서겠다는 거다. 출발은 20일 자정에 하기로 했다.
원정대는 이 시간 뭘 하고 있었을까?
6시 반쯤 회의를 마친 원정대는 간단하게 비스킷과 눈 녹여 끓인 차로 요기를 하고는 조금 눈을 붙인단다.
출발 3시간 전엔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눈을 녹여 물을 끓이고, 장비를 착용하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린단다.
베이스캠프도 밤샘 채비에 들어갔다. 취재진은 모두 무전기가 있는 본부텐트로 침낭을 옮겼다. 밤새 무전기를 켜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전기는 모두 껐다.
본부텐트는 이내 암흑으로 빠져들었다. 각자의 헤드랜튼 불빛만 희미하게 이곳을 밝혔다.
국장님은 23시 30분, 라마 제단에 올라 향을 피우며 등반 성공을 빌었다.
0시 40분, 드디어 첫 무전이 왔다.
출사표였다.
남서벽 코리안루트의 마지막 대장정이 시작됐다.
박 대장은 가능한 두 시간 간격으론 무전을 보내 상황을 알리겠다며 베이스캠프에서 먼저 호출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간간이 대원들 사이에 서로 찾는 무전이 들렸지만 베이스를 찾는 무전은 없었다.
새벽 3시 46분. 박 대장에게 무전이 왔다. 8,600미터 첫번째 절벽이 너무 어렵다는 거다.
거기다 어둡기까지 해 너무 위험하다며 이 절벽을 우회통과하겠다고 전해왔다.
목소리는 절박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중에 박영석 대장은 이때를 뒤돌아보며 '다 죽을 뻔 했다. 완전 전쟁이었다.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
베이스캠프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박 대장으로부터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
그렇게 4시간 반이 지났다.
아침 8시 20분, 드디어 무전이 왔다. 첫 절벽을 넘어섰다는 거다.
거의 암벽등반하듯 넘었다고 했다.
넘어섰지만 서릉은 길고 험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쉬운 길이었으면 왜 이렇게 도전하는 원정대가 거의 없었겠는가... 사실 돌아서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다. 퇴로가 차단된 셈이었다.
지금껏 남서벽으로 오른 팀은 몇 팀 있지만 남서벽으로 내려온 팀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당초 박 대장은 오른 길로 내려오기까지 하겠다고 했으나 올라가면서 말이 바뀌었다.
내려와선 이렇게 회상했다.
'왜 올라간 길로 내려온 팀이 없는지 확실하게 알았다.거기로 다시 내려오는 건 자살행위다. 그 때부터 내가 정상에 간건 다른 이유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살려면 올라야했다'
다시 무전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
간간이 동민이형이 픽스 로프 다 깔았으니 올라오라고 대원들에게 보내는 무전만 들어왔다.
36세, 185cm, 74kg 괴력의 사나이 신동민.
모든 루트를 앞장서 개척하고 있었다.
박영석 대장은 나머지 대원 2명은 8천미터를 넘어선 뒤 완전 지쳐서 '사실 저들을 포기하고 가야하나...아니면 이곳에서 함께 죽어야하나'라고 고민했다고 하던데 동민이형에 대해선 내려오자마자 '저 놈은 인간도 아니야'라며 '8천미터까지 힘쓰는 산악인들은 많이 봤지만, 정상에서까지 평지에서처럼 힘차게 꽝꽝 망치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동민이밖에 없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박 대장은 나중에 남서벽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나는 절벽 올라가서 서릉 능선으로만 가면 능선 따라 쭉 갈 줄 알았어. 근데 이건 능선이 아냐. 8,800미터까지 수직 절벽이야 --;;;바위에 긁혀서 대원들 옷 다 찢어졌어. 진짜 전쟁이야 전쟁. 못 따라오는 동생들 보고 있으니까 진짜 쟤들 포기하고 그냥 갈까 생각 많이 했는데 그 생각할 때마다 제수씨 얼굴 생각나고 그 놈 어머니 생각나서 이를 악물고 100번씩 욕해 가면서 같이 올라갔어."
12시 36분에야 박 대장에게 무전이 왔다.
두번째 절벽까지 넘었다며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뒤면 정상에 설 수 있을 것 같다는 반가운 연락이었다.
통상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는 원정대는 현지 시각으로 오전에 오른다.
내려가는 시간과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이다.
그래서 자정 남짓한 시간에 마지막 캠프를 출발하고 늦어도 오후 2시 정도까지 정상에 도전하도록 계획을 짠다.
2시 이후엔 정상 도전을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원정대의 페이스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걱정이 될 수 밖에...
기다림은 곧 초조함이다.
이토록 맘 졸이는 기다림도 정말 오랜만이다.
본부 텐트에 모인 취재진은 무전기만 뚫어지게 응시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널부러져 있다가도 무전기에서 잡음 소리 하나라도 들리면 벌떡 일어나 무전기를 잡았다.
그러나...야속할만큼 무전기는 고요했다.
오후 2시, 잡음과 함께 "베이스, 베이스" 소리가 들렸다.
모두 무전기로 달려갔지만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텐트엔 더욱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후 3시, 이번엔 소리부터가 달랐다.
"베이스~ 베이스~"를 외치는데 무척이나 들뜬 목소리였다.
아! 성공했구나!
박 대장은 무전 저 쪽에서 "여기는 정상~ 여기는 정상"을 외치고 있었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텐트에 있던 취재진과 셀파들 모두 얼싸안았다.
해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