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건설회사가 고 탤런트 최진실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대법원 선고가 있었다. 2004년 8월, 최 씨가 전 남편 조성민 씨에게 폭행 당한 사진 등을 언론에 공개하자 최 씨가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제기한 소송이었다.
1심은 최 씨에게 "모델료 2억5천만 원을 돌려주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지만, 항소심은 배상 책임이 없다며 최 씨의 손을 들어 주었다. 최 씨가 조 씨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도덕적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고, 당시 언론 인터뷰도 조 씨의 주장을(일방적인 폭행이 아니었다는) 반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같은 항소심 결과와는 반대로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연예인들이 신뢰성과 가치, 명성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광고주와 계약을 하는 만큼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폭행사건은 남편과의 불화가 원인이고 최 씨도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해명 때문이었다는 기자 인터뷰 역시 적극적인 품위 손상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해석이었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해를 당한 '자연인 최진실'에 무게를 둔 반면, 대법원은 '공인 최진실'에 무게를 둔 것이라 읽혔다.
우리 사회의 공인으로서 연예인이 지켜야 할 품위와 명예를 엄격히 해석한 것이라고 나 할까. 최 씨가 망인이 된 마당에 소송을 진행하는 가족들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판결 내용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납득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기사를 쓰고 판결문을 덮으려는데 낯익은 이름 석 자가 눈에 들어왔다.
'대법관 신영철'
단독 판사들의 재판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전례 없는 질타를 받고 계신, 대법원장의 엄중경고에 무겁디 무거운 굴레를 짊어지고 계시다는, 수많은 비판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귀와 입을 굳게 닫고 계신 그 분. 바로 '그 분'이 최진실 사건을 담당한 4명의 재판관 중 한 명이라니.
공인의 품위와 명예를 문제삼은 판결이 법리적으로는 훌륭할지 모르겠으나 어째 뒷맛은 영 개운치 않았다.
연예인이 갖춰야 할 품위와 대법관이 갖춰야 할 품위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원만치 못한 가정사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단 이유로도 억대의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데, 부당한 지시로 사법부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것은 소심한 편지 한 장으로 배상이 되나.
오천만 국민 중 수백 명밖에 안 되는 연예인들에게 적용되는 품위와 명예의 기준이 저리도 엄격하다면, 오천만 중 열 세 명뿐인 대법관들은 숨이 막혀서 어찌 살까. 실제로 숨이 막히기는 할까?
고민하는 내게 옆에 있던 선배가 한 마디 한다.
"계약서 안 썼으니 상관 없지 뭐."
법관의 임기를 법으로 보장해 둔 것은 정치적으로 굽힘이 없는, 소신 있고 현명한 재판 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법부가 행정부에 머리를 조아렸다는 사람들의 냉소가 이미 여기저기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자구해석'에 몰입해 귀를 닫고 머리를 흔드는 법원의 모양새는 어떻게 봐도 궁색할 따름이다. 무너진 사법부의 권위는 언제쯤 회복이 될까? 이참에 법관용 계약서를 만드는 입법안이라도 추진하자고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