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나마스떼! 초모랑마!] ③ 병든 소처럼


구글 선호 소스에 SBS뉴스 추가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 고소에 적응하기 전까진 일절 머리도 감지 말고 샤워도 하지 말라고 한다. 몸에 물이 닿으면 특히 머리에 물이 닿으면 체온이 떨어지면서 고산병이 온다는 거다.

나도 이 말에 따라 카트만두에서 샤워를 한 이후 머리도 안 감고, 샤워도 안 했는데 국장님이 남체까진 샤워를 해도 된다고 한다. 단, 머리는 감지 말란다.

남체의 숙소는 훌륭했다. 팍딩엔 없던 개인 샤워 시설까지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 샤워는 하기로 했다.

아...따뜻한 물의 고마움이여...

너무도 행복했다.

광고
광고 영역

이 날 이후 3주가 넘도록 난 샤워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에베레스트 트래킹을 할 땐 고소 적응을 위해 남체에서 이틀밤을 잔다. 도착해서 하루 자고, 다음날 바로 올라가지 않고 하루 더 머물면서 근처를 돌아다니며 고소 적응을 하는 게 정석이다.

우리도 원래 남체에서 하루 더 머물며 고소 적응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베이스 캠프에서 연락이 왔다.

박영석 대장이 지금 날씨가 좋으니 5월 3일경 올라가겠다며 우리에게 빨리 올라오라고 난리였다.

하지만 난 이미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면 수면 고도를 낮추는 게 최선이고, 최소한 수면 고도를 유지해야 한다.

난 정석대로 하고 싶었다.

국장님은 나를 보며 걱정을 하시면서도 아침에 일어나 상태를 보고 심각하지 않으면 올라가자고 한다.

자는 도중 머리가 아파서 여러차례 깼다.

광고
광고 영역

다음날 아침, 여전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하루 머물고 싶다.

하지만, 국장님은 그정도 증상은 괜찮다며 출발하잔다.

ㅜㅠ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남체에서 다음 목적지인 텡보체로 가는 길이다.

평탄하게 쭈욱 이어진 길이라 트래커들은 '히말라야 하이웨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좋은 길이었지만, 눈에 띄게 내 페이스는 떨어졌다.

국장님도 숨이 거의 넘어갈만큼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나는 국장님보다 25살 정도 어리다. 그러니 처음 출발할 땐 당연히 내가 국장님보다 빨리 올라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광고
광고 영역

남체를 넘어간 뒤 국장님은 숨소리만 거칠어졌을 뿐 쌩쌩한데 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난 숨도 별로 안 차서 호흡이 매우 고른 편이었는데도 내 동작은 마치 달에 온 것처럼 슬로모션이었다 --;;

국장님보다 빨리 가긴 커녕 발만 보고 쫓아가기도 힘들었다.

더 황당한 건 얼마있지도 않은 내 근육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거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허벅지 근육이 빠져나가는 듯했고, 스틱을 땅에 찍을 때마다 양 팔의 근육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난 슬로모션이 됐다. 도저히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사진 찍는 것도 귀찮았다. 경치고 뭐고 다 귀찮았다.

그래서 이번 카라반 동안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

그냥 땅만 보고 걸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땐 이왕 찍는 거 밝은 표정으로 찍어야하지 않겠는가?

국장님 曰...

그렇게 다 죽어가던 애가 사진으로보면 전혀 힘들었던 티가 안 난다고...

나중에 사진만 보면 올라가면서 빌빌거린거 아무도 모르겠단다.

  + + + + + + + + + + + + + + + + + +

여기까진 곳곳에 사람 사는 흔적이 보였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 걸까...

트래킹하는 사람들이 먹고 자는 마을은 정해져있는데 그 중간에 터전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까...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누추해보이는 살림살이와 해맑게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풍기텡가란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역시 밥맛이 없었다. 잘 먹어야 하는데...

난 원래 식욕이 왕성하고 잘 먹는 편이다.

먹을 것을 보고도 땡기지 않는 건 정말 황당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먹을 수가 없었다.

고산병에 대한 자료를 읽었을 때 고소에선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게 좋단 게 생각났다.

소화가 가장 잘 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입맛없는 내가 찾아낸 메뉴가 찐 감자였다.

원래 찐 감자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고지대로 갈수록 감자 맛이 좋게 마련이고, 아무것도 안 섞은 찐 감자는 역겨움도 없으니까.

뭔가 기름에 튀긴 거나 야크 치즈가 섞인 것, 국물 등은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접시 가득 나온 찐 감자도 3~4개 정도밖에 먹을 수 없었다.

더 이상은 손이 안 갔다.

이렇게 부실하게 먹고 산길을 걸으니 당연히... 가다보면 배가 고팠다.

어쩌겠는가...

난 원래 초코바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거라도 먹어야 했다.

틈나는대로 물 마시고...

신기하게도 걷다보면 머리 아픔도 좀 가셨다.

점심 먹을 때 한 달 전 정년퇴임한 한국의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이 선생님은 나에게 명언을 남겼다.

'고산은 체력으로 가는 게 아니다.

고소와의 싸움이다.

한국에서 산에 날아다닌다는 사람들 여기와서 그런 식으로 올라가다 다 고소먹고 뻗는다.

병든 소 걷듯 느릿느릿 그렇게 가야 끝까지 갈 수 있다.'

이미 고소와 싸우고 있던 나는 이 말을 머리에 새겼다.

말 그대로 병든 소 처럼 느릿느릿...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3,800미터 텡보체에 도착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편집자주] 보도국 문화부의 젊은 피, 유재규 기자는 종교계와 대중문화,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뒤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을 거쳤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유 기자는 최근엔 박영석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을 현지에서 동행취재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