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며..


구글 선호 소스에 SBS뉴스 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실제로 뵌 것은 봉하마을에 출장차 내려간 지난달 30일 검찰 출석때였습니다.

물론 전 다음날 새벽 봉하마을로 다시 돌아와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들어갈 때도 현장에 있었지만 육성을 들으면서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4개월만의 사실상 연금생활을 끝내고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자택에서 승합차를 타고 나와 버스앞에 내리셨더랬지요.

그리곤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고 잘 다녀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버스에 오르기 전 한 손을 들고 엷은 미소를 보내던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광고
광고 영역

이런 일이 있고서 상황을 반추하는 것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당시 얼굴은 참으로 어두워 보였습니다.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하는데 당연한 상황이었겠지만 뭐랄까 좀 우울해보이기도 하고 평소하고는 달리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고 할까...

비극은 지난 주 토요일 오전에 벌어졌습니다.

전 언론사가 마찬가지였겠지만 저희도 오전부터 난리가 났었죠.

아침에 아는 분으로부터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멍했습니다. 진짜인가도 싶었고..

출근해보니 회사 전화는 이리저리 울려대고 한 동안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날 하루는 아무 경황도 없이 기사 작성과 방송에만 신경을 쏟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난 지 5일째지만 지금까지도 솔직히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잘 믿겨지지 않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만한 짬도 없었고 수많은 노사모 회원들처럼 가슴에 묻을 정도로 열렬히 그를 믿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전 쓴 글을 보면서 이 분이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하게된 것은 많은 고민과 고뇌가 있었겠구나하는 생각 정도만이 들 뿐입니다.

광고
광고 영역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검찰로부터 받고 있는 혐의의 진위를 떠나 자신의 허물이 부인, 아들, 딸과 여러 측근을 벗어나 개혁세력 전체를 수렁에 빠뜨리게 되는 결과가 올 것을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세상과의 창구로 이용한 '사람사는 세상'에 올린 마지막 글귀입니다.

(전략)..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저 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 자신을 '버리라'고 주문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고 하지 않을 일이기에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버린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로 알려진 내용들로(그것이 사실로 입증되었건 아니든 간에) 자신이 그 동안 추구하고 강조해 온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 도덕적 청렴성, 진보적 개혁 등 이런 가치들이 거짓말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믿고 따라준 가족과 지지세력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복합적으로 자신을 짓누르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유서에 쓰인 내용에도 자신의 심경 외에 누군가에게 당부하는 말은 이 세 마디입니다.

광고
광고 영역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분명히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슬퍼하고 미안해하고 원망할 사람들에게 남긴 메시지겠지요.

비록 노 전 대통령은 괴로운 심정으로 모든 것을 짊어지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솔직했고 자신을 지지해 준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알았으며 명예를 소중히 생각했던 사람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서거 후 전국에 일고 있는 뜨거운 추모 열기도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겠죠.

노 전 대통령은 어쨌든 세상을 떠났고 기득권 세력에 의해 그가 설사 패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가치나 그가 남긴 진정성은 아직 이 시대에 아직 남아 있을 겁니다.

그것들을 우리들이 간절하게 소망하거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분명히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고 자신의 명예와 상관없이 뻔뻔하게 살고 계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많은  이 나라에서도 그렇게 역사는 조금씩 전진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편집자주] 보도국 사회2부의 박상진 기자는 2005년 신문기자로 시작해 2008년 SBS로 둥지를 옮겨 사건팀에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꽁꽁 숨겨진 진실을 찾는 고된 작업에 묵묵히 몸을 던진다'는 박기자는 오랜 법조계 취재경력과 함께 지난해 말에는 용인 창고 화재 참사 당시, 대피를 알리는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해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