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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봤어야 코끼리를 그리지'

돼지 닮은 조선시대 미술품의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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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尊'이란 한자는 발음이 두 가지다. '존중'(尊重)이나 '존숭'(尊崇)처럼 높인다고 할 때는 '존'으로 읽고, 술잔을 의미할 때는 '준'이라고 읽는다.

이런 술잔은 조선시대 각종 제사, 특히 종묘나 공자 제사에도 제기(祭器)로 사용됐다.

남송 말기-원나라 초기 중국에서 나온 사림광기(事林廣記)라는 생활문화 백과사전 중 후집(後集) 권11에서는 기용류(器用類), 즉 각종 그릇이라는 제목 아래 여러 가지 기물을 설명한다.

여기에 각종 '尊'이 거론된다. 대준(大尊)ㆍ산준(山尊)ㆍ상준(象尊)ㆍ희준(犧尊)ㆍ호준(壺尊) 등으로 크기나 모양, 기능을 기준으로 구분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중 상준(象尊)은 모양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으로 사림광기에서는 그 특징을 "코끼리로 술잔 복부 위를 장식하니, 붉은 칠을 하며, 가운데 아가리는 지름이 1척2촌이요 바닥 지름은 8촌인데, 상하 빈 공간은 지름이 1척5푼이고, 다리 높이는 2촌이다"라고 설명한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 상준은 백자와 같은 도자기로 제작되기도 하며, 그런 유물은 적지 않은 숫자가 전해지기도 한다.

성균관대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이런 상준 두 가지가 나란히 전시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순백자이며, 다른 하나는 철화백자다. 몸통은 코끼리이며, 그 등 한복판에 원통 모양 주둥이를 만들어 놓았다.

누가 봐도 이 동물이 코끼리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모양이 가관이다. 차라리 돼지나 두더지형 코끼리라고 불러도 대과가 없을 만큼 우스꽝스럽다. 다리는 돼지 다리만큼이나 짤따랗다.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박물관 김대식 학예연구원은 "조선 사람들이 코끼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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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실제 코끼리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기록이나 풍문으로 전해 들은 모양을 표현하다 보니, 코끼리 같지 않은 코끼리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림도 다를 바가 없다.

경희대 중앙박물관(관장 조인성)이 대학 개교 60주년을 맞아 21일 개막한 '박물관 대표 유물 특별전'에 선보인 전시품 중에는 '코끼리문(文) 청화백자병'이 있다. 코끼리 문양을 그려 넣은 청화백자로 만든 병이라는 뜻이다.

코끼리 그림은 코발트 계열에 속하는 청색 안료를 이용해 그렸다.

박물관 측은 "상아와 긴 코가 있는 것으로 보아 코끼리를 묘사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다소 이상하게 보이는 이유는 코끼리를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상상해서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김대식 연구원의 설명과 같다.

당시 조선사람들이 코끼리에 대해 생소할 수밖에 없던 사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경희대박물관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권24 산장잡기(山莊雜記)에 보이는 '상기'(象記), 즉, 코끼리에 관한 기록을 든다.

이에서 연암은 코끼리를 이렇게 묘사한다.

"소 몸뚱이에 나귀 꼬리, 낙타 무릎에 호랑이 발톱, 짧은 털, 회색빛, 어진 표정, 슬픈 소리를 가졌다. 귀는 구름을 드리운 듯 하고 눈은 초승달 같으며, 두 개 어금니 크기는 두 아름이나 되고 키는 1장(丈. 약 2.1m) 남짓이나 된다.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 자벌레처럼 구부렸다 폈다 할 수 있으며 또 굼벵이처럼 구부러지기도 한다. 코끝은 누에 끄트머리 같은데 물건을 족집게처럼 집어서 둘둘 말아 입속에 넣는다. 어떤 사람은 코를 부리로 여기고는 다시 코가 있는 데를 찾는다. 대개 코가 이렇게 생겼을 줄은 생각이나 했으랴."

그러면서 연암은 "어떤 사람은 코끼리 다리가 다섯 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코끼리 눈이 쥐와 같다고 하는 것은 대개 관심이 코와 어금니에 집중된 탓이다. 그 몸뚱이를 통틀어 제일 작은 놈을 집어가지고 보면 이렇게 엉뚱한 추측이 생길 만하다. 대체로 코끼리 눈은 매우 가늘어 간사한 인간이 아양을 떠는 듯하나, 그건 전적으로 오해다. 코끼리의 어진 성품은 어디까지나 눈에 있다"고 했다.

코끼리를 실제로 본 감상을 연암은 이렇게 표현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코끼리를 상상해서 그린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틀림없이 저 돼지 모양 백자상준이나, 청화백자병에 보이는 괴상한 코끼리가 될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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