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파동을 둘러싼 일선 판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19일부터 전국 법원의 판사회의가 잦아들면서 외견상 소강 국면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후폭풍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판사들이 이처럼 발끈하는 이유는 뭘까요?
광주고법의 한 판사는 "이번 사안은 '법관의 독립'이라는 사법부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 나아가 사법부의 존립 근거를 흔든 것"이라며 "그냥 덮어두고 갈 수 없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법원 내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과거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려 했던 사법파동 때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면서 "사태가 장기화되면 추가적인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광주고법은 26개 전국 법원 가운데 "신 대법관의 재판권 침해는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며 가장 수위가 높은 결의내용을 발표했던 곳으로, 신 대법관이 자진 사퇴를 하지 않을 경우 연판장 발송이나 집단 사표제출을 감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와서, 그것도 '집단 행동'의 양상을 띠면서 반발이 거세지는 이유는 뭘까요?
이에 대해 한 대법원 관계자는 "일선 판사들이 신 대법관을 믿었다가 배신 당한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3월 촛불재판 개입 논란이 불거져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재판개입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발표할 때만 해도, 신영철 대법관은 '나가더라도 떼밀려 나가면 모습이 보기 좋지 않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 문제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고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회부한 것도, 나아가 공직자 윤리위원회가 '신 대법관의 행위가 부적절했지만 그렇다고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다소 우회적인 결론을 내린 것도 신 대법관에게 '퇴로'를 열어준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때문에, 판사들은 윤리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진 직후 신 대법관의 '용퇴'를 기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 대법관이 '이 자리(대법관직)에 있는 동안 굴레와 낙인을 짊어지고 가겠다'고 사실상 사퇴할 뜻이 없음을 내비치자 판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섰다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제 어느 한 쪽이 피를 볼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대법관이 사퇴하지 않으면 일부 판사들이 집단 사표를 내는 극단적인 상황까지도 올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편집자주] 2003년 신문기자로 시작해 2007년 SBS에 입사한 김지성 기자는 사회2부 법조팀에서 검찰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뚝심있고 끈질긴 기자정신으로 현장을 누비는 김 기자는 정치부에서도 활약했으며, 2003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겨놓은 비자금'과 관련한 특종보도로 큰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