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어린이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꿈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가족들은 물론 정작 자신이 심각한 신체적 장애를 앓고 있으면서도, 우리 사회가 아직은 완전하게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중증장애 어린이들을 지극 적성으로 돌보고 있는 정영자(51.여)씨.
찢어지는 가난으로 고아처럼 어린 시절을 보낸 정씨는 한창 미래를 꿈꾸고 젊음을 즐겨야 할 스물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그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수차례 위세척 치료를 받고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 후유증으로 당뇨병을 앓게 됐고 이후에는 관절도 굽히지 못하는 고난까지 더해지게 된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질병을 자신의 것처럼 안고 살아가는 정씨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다.
경기도 파주 인근의 한 기도원에서 만난 뇌병변 1급 장애인을 남편으로 맞은 정씨는 곧이어 당시 한 고등학생 부부가 고아원에 맡긴 역시 뇌병변 1급인 선실(9)이를 아들로 받아들였다.
한국우진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선실이는 앉기는커녕 아직도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로 심한 장애를 앓고 있지만, 정씨는 아들이 씩씩하게 커가고 있는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는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소식지에 기고한 글에서 "비장애 아이들이 기고 (엄마의) 눈을 마주칠 때 내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소리 없이 웃고 우는 것이지만, 아들의 작은 신음마저 나의 유일한 기쁨이요, 행복"이라고 썼다.
밥 한술 뜨기도 힘겨운 남편을 보살피고 매일 선실이와 함께 병원을 드나드는 힘겨운 삶 속에서도 정씨는 10년째 '여호와의 릿시'라는 장애인 '그룹홈'을 운영하며 오갈데 없는 장애인들을 보살피고 있다.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승리의 깃발'이라는 뜻의 이곳에는 수많은 장애인복지단체가 수용을 거부한 뇌병변 1급 장애어린이 등 9명의 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뤘지만, 정씨는 이들을 '우리 가족, 우리 식구'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정씨는 4일 "누가 누구를 돕고 도움을 받는다는 차원을 떠나 같은 아픔과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만으로 '가족'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한국의 `마더 테레사' 정씨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이들 가족과 함께 여의도공원으로 소풍을 떠난다.
남편과 결혼한지 20년,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한지 10년만에 가족끼리 첫 외출이다.
그는 "우리 장애우들에게 갖는 가장 큰 소망은 커서 꼭 따뜻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며 "이번에 떠나는 짧은 여행이 장애우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