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LIVE

[영화이야기] '박쥐' 거친 강렬함, '친절한 찬욱씨'(?)


Google 즐겨찾기에 SBS뉴스 추가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남상석의 영화이야기

박쥐

(감독: 박찬욱, 주연: 송강호, 김옥빈, 18세관람가)

 <박쥐>는 다른 출품작들 감독 이름만 들어도 그랑프리 못받으면 서운할 것 같은 영화들로 즐비한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당당히 진출했고, 촬영 중간인 지난해 9월, 할리우드 메이저인 유니버설 픽쳐스의 투자 유치를 받아 화제에 오르기도 했었죠. 기자시사회 직후, 극찬과 실망을 오가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더니 예매율 1위로 개봉을 맞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빼고는 그냥 스쳐가듯 한번 보며 편안하게 즐기다가 극장문을 나서는 영화와는 좀 거리가 있죠.

광고
광고 영역

영화에 대한 분석이나 느낌을 표현하는데 있어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가 있듯이 어느 누가 봐도 재미있는 영화가 있는 반면, 보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 극과 극의 느낌과 감상이 엇갈리는 영화도 있습니다.

다만 나는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이 극찬한다고 내가 무식하거나 비정상은 아니라는 거죠. (이 부분은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계몽주의적으로 발산해 '요즘 들어 많이 똑똑해진 대중들'에게 가르치려 들거나 수치감을 유발하게 하는 접근을 시도하다가 반발을 초래한 전문가들의 오류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나는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러냐?'며 발끈한다면 별로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영화를 둘러싼 담론이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의 차이에 따라 편을 갈라 소통 없이 서로 자기 말만 쏟아 붓는 시사토론처럼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내가 볼 때 별로인 영화가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본다고 사촌이 땅을 산 것처럼 배 아파하거나, 내가 아주 재미있게 또는 감동적으로 본 영화를 다른 사람들이 거의 안 본다고 해서 내가 그 영화의 투자자가 아닌 이상 마음 아파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소울 메이트'라고 할만한, 마음과 취향이 거의 일치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동반자와 함께 나란히 앉아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느낌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인터넷을 뒤지다보니 <박쥐>에 대한 반응이 다소 엇갈리며, 상찬한 글에 대해 인신공격이나 음모론까지 거론하는 댓글을 보고 살짝 걱정되는 측면도 있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박쥐>는 포함한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에게 재미있게, 흥미롭게 다가서는 성격의 영화는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감독의 자의식만 잔뜩 늘어놓는 난해한 '자뻑 영화'도 아니지만 이 영화를 재미없게 본 분들이 '자뻑 영화'로 오해할 여지도 충분히 많은 영화입니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로 굳이 틀을 나눈다면 박찬욱 감독은 그 사이를 오가며 독창적인 형태의 영화 작업을 해나가고 영화계 내외부에서 그 작품의 성격과 100% 일치하지 않는 위상을 획득한, 한국영화계나 다른 나라 영화계에서도 그 비슷한 감독을 찾기 어려운 희귀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광고
광고 영역

병원에 근무하는 젊은 신부 상현(송강호)은 아프리카의 한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희귀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개발 실험에 종교적 신념을 갖고 참가합니다. 실험 도중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고, 응급수술을 받으며 수혈을 받아 다시 살아나는데 수혈 받은 피 때문에 밥 대신 사람의 피를 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뱀파이어가 됩니다.

한국에 돌아온 상현은 주변에 기적을 행하는 신통력을 지녔다고 소문이 나고 그런 과정에서 어릴 적 친구 강우(신하균)와 그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나게 되는데, 욕구불만인 태주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고 그녀의 치명적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 이후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굳이 장르로 구분하자면 뱀파이어 치정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껭]에서 치정극의 기본 얼개를 빌려오고 거기에 뱀파이어 신부라는 요소를 새로 넣었다고 합니다.

종교적 차원에서 구원과 속죄를 담고 있고, 위험을 느낀 합리적 인간이 그 위험한 유혹에 푹 한번 담갔다가 다시 나와 결국 희생을 통해 종교적인 순교를 의미하는 이성적인 선택을 한다는 결말을 갖는 구조인데요. 결말의 안이성 때문인지 영화의 주제적 측면에서는 높은 성취를 이룬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특정한 씬이나 시퀀스 내에서 연기와 촬영, 시나리오, 미술 등 각 요소의 조화와 완성도는 높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칠고 툭툭 끊기거나 불친절합니다. 미시적인 차원의 매끄러움과 거시적 차원의 거침이 맞부딪혀 내는 공명 효과의 주파수는 가청범위가 협소한 편이지만 일단 주파수 동조가 이뤄지면 놀라운 영화적 체험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시종일관 엉뚱한 상상력으로 일관해 일부 관객들로부터 '쓰레기 영화'라는 혹평을 들었던 <다세포소녀>의 반짝거리는 여주인공으로 활약했던 김옥빈은 이 영화를 통해 여배우로서 입지를 확고하게 세웁니다. 딱 맞는 옷을 입어 빛이 나는 것처럼 잠재된 매력을 맘껏 발산하며 팜므파탈 이미지를 풀어냅니다.

이를 받아주는 송강호의 본능적이고 계산적인 연기도 훌륭합니다. 신하균, 김해숙, 오달수, 송영창, 박인환 등 내공 깊은 배우들의 조연 연기도 든든하고요.(사실 이렇게 '하이'한 영화에서는 자주 등장해 많은 대사를 풀어내는 주인공들보다 띄엄띄엄 나와 몇 마디 하지 않는 조연들이 연기의 톤이나 감을 잡기 더 어려운 법이고 조연 연기가 어색하면 영화 전체가 엉망이 될 수가 있죠.)

원래 뱀파이어의 치명적 매혹이 에로티시즘과 함께 가는 측면이 있는데다 상현과 태주의 러브신 에로티시즘 수치도 상당히 높게 올라가고요. 중간 중간 몰입을 방해하는 듯한,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머뭇거리게 하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들도 많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목을 물어뜯는 게 아니라 고작 가위로 손목을 긋는다든지, 아니면 환자의 팔에 꽃혀있는 링거 주사 호스를 빨아먹거나, 심지어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컵에 따라 먹기까지 하는 '생계형 뱀파이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광고
광고 영역

상현이 리코더를 불다가 피를 쏟아내는 장면처럼 느닷없음의 충격이 강렬합니다. 관객의 예상을 깨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불쑥 들이미는 이런 장치의 거친 불친절함을 낯설게 느끼거나 매력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여러 번 보며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았지만, 깊은 울림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적 식견과 내공, 미학적 감각 등 탁월한 재능을 보다 더 쉽게 풀어내 더 많은 관객들이 열광하며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친절한 찬욱씨'가 될 수는 없을까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해봅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편집자주] '영화를 보는 편안한 시선'  남상석 기자는 2002년부터 영화계를 출입해 온 베테랑 문화 담당 기자입니다.  1993년  공채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등을 거쳐 오랜 기간 보도국 문화부에서 내공있는 필력을 과시해 왔습니다. 영화와 영화인들을 좋아하며  '평론가처럼 어렵지 않은.. 관객의 한사람 같은 친근한 눈높이의 영화평'으로 개인 블로그도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오늘의 숏뉴스
숏뉴스를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