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대교에서 금천구 독산동까지 안양천변을 따라 달리는 서울 서부간선도로를 이용해보신 적 있으시죠? 정말 심하게 막히지 않습니까? 출퇴근 시간 뿐 아니라 하루종일 교통 정체에 시달리는 도로입니다.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수가 도로가 소화해낼 수 있는 한계치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단 하나입니다. 서부간선도로를 확장하거나 그 구간에 또다른 도로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런 요구가 지난 20년 동안 빗발쳤지만 서울시는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도로를 놓을 용지를 구하기 어려워서입니다.
이런 사정은 중랑천변의 동부간선도로나 한강 북안을 이용하는 강북강변도로 등도 매 한가지입니다. 특히 강북강변도로의 성산대교에서 원효대교까지는 유명한 상습 정체 구간입니다. 마포 등지에서 유입되는 차량수는 엄청나게 많은데 도로는 오히려 상하행선이 모두 한 차선씩 줄어 심각한 병목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역시 도로를 늘려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럴 땅이 없습니다. 증상이 심각하고 무슨 약을 쓰면 되는지 뻔히 알면서도 약을 구할 수 없어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는 형국이군요.
서울시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심도, 즉 지표면에서 40미터 이상 깊은 지하 공간을 도로로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놨습니다. 이 정도 깊이에는 상,하수도나 통신선, 가스관 등 각종 매설물이 전혀 없어 공사에 걸릴 것이 없습니다. 지하철도 물론 이보다는 얕은 지하로 다니니까 방해가 되지 않겠죠. 또 땅 속 너무 깊은 곳이라 공사로 인한 소음, 진동 등이 지표면에 영향을 주지도 않습니다. 아울러 지하에는 도로를 가로막을 장애물이 없는 만큼 고속화가 가능한 직선주로로 설계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장점은 막대한 토지 보상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하 40미터의 공간은 그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고 따라서 국가가 아무 보상 없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지표면에 도로를 건설할 때와 비교해 대심도 도로의 전체 공사비는 60%에 불과하다는 추산도 있습니다.
서부간선도로의 경우 서울 도심에서 서해안고속도로로 가기 위해 이 도로를 그냥 통과하는 차량이 5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따라서 대심도 고속화 도로를 건설하면 절반 가량의 차가 분산되는 효과를 얻을 것이고 서부간선도로는 제속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 컨소시엄이 이런 사업 구상안을 서울시에 내놨고 최근 KDI와 PMAC의 투자 적격 결정도 받았습니다. 앞으로 기획재정부의 심의를 받은 뒤, 공모를 통해 더 좋은 조건으로 사업안을 내놓는 민간업체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빠르면 내년 하반기쯤 착공될 예정입니다.
앞서 말한 강북강변도로의 성산대교에서 원효대교 사이 구간 역시 하저터널로 연결하는 방안이 구상되고 있습니다. 추가로 교각을 놓아 하안 다리로 도로를 만들 수도 있지만 교각이 한강의 흐름을 방해할 수 밖에 없어 수해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고 보수 유지비도 많이 들기 때문에 하저터널 방안이 더 각광을 받고 있다는 서울시 측의 설명입니다. 성사만 된다면 강 밑바닥 아래로 통행하는 최초의 차량 도로가 될 전망입니다.
도시의 대심도 지하를 주목하고 있는 사업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서울 시정개발연구원은 서부간선도로 외에도 올림픽대로, 동부간선도로와 같은 주요 간선도로와 남북중앙축, 동서북부축 등 10개의 대심도 도로를 놓는 방안을 내놓고 타당성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이 구상이 실현될 경우 서울의 깊은 지하에 거미줄과 같은 도로망이 깔리는 셈입니다.
그런가하면 경기도와 국토해양부는 동탄, 의정부 등 수도권 주요 도시와 서울 도심을 직접 이어주는 대심도 고속철도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반 지하철과 달리 직선 주로 위주로 건설하는데다 정거역의 수를 줄여 동탄에서 서울 강남까지 20분 안에 올 수 있도록 한다는 설명입니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대단히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는군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입니다. 설명대로라면 수도권의 막대한 교통량을 상당폭 줄여줄 수 있을테고, 서울 지역 집값을 안정시키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깊은 지하를 통해 막대한 차량과 인원이 이동한다는 이야기가 마치 공상과학 소설속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대심도 도로나 고속철이 우리들에게 교통의 유토피아이기만 할까요? 많은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젓습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각종 재난에 대한 우려입니다. 혹시 영화 '데이 라이트'를 보셨습니까?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요, 제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는 뉴욕과 육지를 이어주는 긴 해저터널 한 가운데에서 유독물질을 실은 트럭이 폭발 사고를 내면서 터널 일부가 붕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죽어가는 재난영화였습니다. 인명 구조 전문가인 실베스터 스탤론이 많은 사람들을 구해서 탈출시킨다는 이야기인데요.
이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대심도 도로도 똑같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지하 40미터 아래의 공간은 지상과 크게 분리돼있기 때문에 사고가 날 경우 이용자들이 탈출하거나 외부의 구조 인력이 투입되는데 더 많은 어려움이 불가피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따라서 각종 사고나 재난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재삼재사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대심도 도로를 처음부터 두개를 뚫어서 한쪽 길이 사고로 막히거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다른 도로로 탈출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던가, 곳곳에 사람들이 지하도로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비상통로를 마련해야 한다던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하게 대피해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던가, 위험 물질을 싣고 다니는 탱크로리와 같은 차량의 통행을 아예 금지하는 방안 등입니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이렇게 삼중, 사중의 대비책을 강구하더라도 사고 가능성을 0%로 만들 수는 없는 만큼 우려가 남는다고 지적합니다.
건설 공사 상의 난제로는 지하수의 처리가 있습니다. 지하수야 땅을 파는 공사라면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만, 지하 심도가 깊을 수록 지하수의 수압이 강해지고 따라서 이에대한 대책 마련도 더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환기도 골칫거리의 하나입니다. 그 긴 터널 구간에 적절하게 공기를 공급하고 내부에서 발생하는 매연을 빼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최근 환기 관련 기술이 대단히 발전했습니다만 엄청난 심도로 인해 환풍구를 많이 설치하기 매우 어려운 만큼 관련한 또 다른 차원의 기술 개발이 필요합니다. 지하 40미터와 지상의 도로를 이어주는 램프의 설치도 간단치 않은 작업입니다. 자칫 본 도로의 건설비용보다도 각 램프를 만드는 비용이 더 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물리적 요인들 외에 심리적 요인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충고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외부와 격리된 채 갇혀있는데 대해 두려움을 느낍니다. 심하면 폐쇄공포증이라는 이상 심리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운전을 하면서 긴 터널을 지날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왠지 불안하고, 기분 나쁘고 한 경험 있지 않습니까? 채 5분도 안 걸리는 터널을 지날 때도 이럴진대 20분 넘게 컴컴한 터널속을 달린다 생각하면 분명 유쾌하지는 않겠죠.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터널의 천정과 벽면에 LED 패널을 붙여 외부 풍경을 띄워 놓음으로써 폐쇄되거나 고립됐다는 느낌을 줄여줘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교통 시설을 건립할 부지를 찾기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대심도 지하는 분명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또 아직까지는 전인미답이라 개발의 여지도 무궁무진하죠. 하지만 깊은 지하에서 지하로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면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손상받는 듯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요? 대심도 지하 생활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나 사는 모습은 아니기 때문 아닐까요.
[편집자주]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에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