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최고상에 이어 8개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있는 독립영화 [똥파리]가 개봉됐습니다. 상받을만 하더군요. 해외의 호평에 힘입어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전국 60개 상영관을 잡았습니다. [워낭소리]의 성공에 힘입어 상당히 적극적인 개봉전략을 펴는데요. 관객들의 호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법한 상훈(양익준)은 4살 많지만 친구 트기로 한 만식(정만식)과 함께 용역회사를 차려 일합니다. 만식은 사무실에 앉아서 관리하는 사장이고 상훈은 후배들을 이끌고 직접 현장을 뛰는 행동대장으로 활약하며 대학 학내분규 시위 진압, 노점상 철거, 사채 회수 등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칩니다. 그 원동력은 이 남자 가슴에 자리한 엄청나게 뜨거운 분노의 불덩어리 때문입니다. 이 불덩어리는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습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고등학생 연희(김꽃비)와 시비가 붙었다가 그만 친해지는데 생양아치인 상훈에게 지지 않는 깡을 지닌 연희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가까워집니다.
대충 커다란 주제는 '헤어날 수 없는 폭력의 악순환' 정도 될 텐데요. 국내외 영화들에서 많이 다뤄졌던 주제인데 이 영화의 독특함은 부글부글 끓는 에너지와 정교한 각본, 이를 스크린에 풀어낸 배우들의 호연에 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이 폭력으로 시작하고 주인공의 입에서 나오는 첫 단어도 욕설입니다. 이후 주인공 대사의 7~80%가 욕설로 진행되는데 알아듣기 어려운 욕설은 별로 없어 평소 깨끗한 언어생활을 한다고 자부하시는 분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욕들입니다.
먼저 주인공의 가정환경이 기가 막힐 정도로 불운합니다. 배다른 누나와 조카가 있는데 누나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 나와 이혼하고 힘겹게 아들을 키우고 있고, 그전에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던 아버지는 한순간의 실수로 상훈의 여동생을 살해합니다. 어머니도 불의의 사고로 저세상으로 떠나게 되자 상훈은 모든 에너지를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집중합니다.
긴 감옥생활을 마치고 혼자 쪽방에 기거하는 노인네를 찾아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으며 구타하는 정도의 패륜도 서슴없이 보여지니까요. 상훈의 상대역인 연희네 집안도 못지않습니다. 월남전 참전 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보이는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고 있는 아버지는 수년전 포장마차를 하다가 용역 깡패의 손에 죽음을 당한 어머니를 아직도 찾고 있고, 남동생은 연희에게서 집세낼 돈까지 뜯어내는 한심한 백수인데, 상훈의 용역회사에 들어가 "막노동을 해도 4~5만 원 밖에 벌지 못하는" 세상에서 하룻밤에 2~30만 원씩 벌어오며 연희의 의심을 받습니다.
초반부 욕설과 폭력의 당혹스러움과 핸드 헬드로 찍어 마구 흔들리는 화면의 울렁증을 조금만 참으신다면 인물들에 감정이입이 되며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실리며 두 시간의 여정에 동참하게 됩니다. 중간중간 코믹한 상황과 대사들도 있으니 그렇게 삭막하지만도 않습니다.
겉으로 강인하고 난폭하지만 마음 쓸 줄 모르던 상훈이 초반에 유일하게 마음을 나눠주는 상대는 조카였죠. 그러다가 연희와 만나게 되면서 그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뜻대로 펼쳐지지는 않죠. 비극과 해피엔드를 절묘하게 섞어 관습적인 결말을 피한 것도 높이 사줄만 합니다.
연출과 각본 주연을 맡은 양익준의 역랑이 놀랍고 - 수년전에 실제 조폭 보스가 조폭영화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양익준은 마치 실제 양아치를 캐스팅한 것 같습니다. 길에서 지나치며 눈이라도 마주치면 저절로 피하게 될 정도로 섬뜩합니다.―
[삼거리극장]에서 해맑은 웃음 바이러스를 퍼뜨렸던 김꽃비도 보다 성숙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독립영화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탄탄한 캐스팅에 남녀 주인공 못지않은 균질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냅니다. 비극이 잉태되는 불운의 사고라는 장치와 각각의 인물들이 깨닫지 못하면서 얽히는 우연적인 요소의 관습적인 면이 조금 아쉬운데 아쉬운 점보다는 성취가 더 돋보입니다.
요즘 독립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요. 침체에 빠져있는 상업영화계가 [똥파리] 등의 독립영화를 통해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를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