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라도 돌아가신 영혼 달래드려야지, 어쩌겠어요..."
어수선하기만한 브리핑이 끝나고 담당 반장님은 진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3살. 해보고 싶은 것도, 못해본 것도 참 많은 나이였던 한 여학생은 지난해 11월, 그만 아버지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내 딸을 죽였으니 시신을 수습해달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이틀 뒤 아버지 또한 고향 마을에서 스스로 목을 매달았습니다.
강남라인에 있었을 때 제가 다뤘던 기사였는데요, 출입처를 옮기고 난 뒤에 다시 이 일을 다뤘으니 어쩌면 제게도 인연이 닿았던 기사였나봅니다.
부모님 걱정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겠노라, 내 등록금과 생활비는 스스로 꾸려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사채업자에게 3백만원을 꾸었던 가엾은 맏딸은 그게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그야말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루 4만원씩 석달, 그렇게 계산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사채업자들에게는 '꺾기' 라는 무서운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자가 연체가 되면서 돈이 불어나면 원리금을 합쳐서 새로 계약서를 쓴 뒤 불어난 '원금'만큼의 이자를 다시 받기 시작합니다.
액수가 적을 때도 못 갚았는데, 늘어버렸으니 방법이 있나요.
'꺾기' 는 계속 되풀이됐고, 일년이 지나자 빚은 2천만원으로 불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여학생들은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됐고, 이른바 '2차' 를 나가지 않으면 돈을 갚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밤 술을 마시며, 웃음을 팔면서 과연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친구를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사람은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요.
제가 대인기피증이 생겼어요.누가 지나가도 아래위로 나를 훑어보면 '아, 내가 '2차' 다니는 거 혹시 봤나, 이 사람들이?' 빌린 돈 무한대로 갚은 것 같아요. 노예처럼 일한 것 같아요.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기자의 본분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취재가 끝난 뒤에도 마음이 아려서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용기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그 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께는 이제라도 편히 쉬셨으면 한다는 말을 전해봅니다.
사채업자들을 한동안 교도소에 지내게 한다고해서 상처받은 몸과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겠냐마는, 그저 '나쁜 놈' 잡아들이고, 기사써서 널리 알리는 것 외에 달리 위로할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나중에라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서 추스리고 씩씩하게 살아주세요.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