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의 계기는, 사실 언젠가 갔던 한 고깃집 메뉴판을 보고 나섭니다.
연기 안 나는, 깔끔한 분위기의 식당들은 '와인' 리스트를 갖추고 있는 게 대부분인데 이 식당은 '한국술' 리스트를 갖다 주는 겁니다. (한식당도 아닌데...)
모르는 술이 많아서 신기하기도 했고요.
우리 것에도 좋은 술, 맛있는 술이 많은데 왜 와인과 사케 바람만 그렇게 거센지.
요즘 경기 불황 탓인지, 값싼 막걸리가 인기를 끌고 특히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들도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뉴스는 여러 차례 접했는데 이 막걸리 열풍을 곧 한국술 열풍으로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서울에선 식당에서 막걸리를 시키면 대부분 초록병의 장수막걸리가 나옵니다.
효모균이 살아있어서 유통기한은 10일 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막걸리 공장은 매일 새벽 6시부터 생산에 들어가 당일 오전에 배송을 나간답니다.
유통기한 짧은 문제를 해결하고, 신세대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 끝에 탄생한 것이 '살균 막걸리'인데, 효모균을 죽이기 때문에 최대 1년까지 보관 가능합니다.
탄산도 들어있어서 목넘김이 좋고, 상쾌한 맛이 나죠.
페트병과 캔, 2가지로 나와서 서울, 경기를 벗어난 지역이나 해외로 보낼 때는 이 제품이 주로 나갑니다.
- 막걸리 공장에선, 맥주로 따져서 효모가 살아있는 막걸리는 '생맥주', 살균한 막걸리는 '병맥주'에 해당한다고 비유해 줬습니다. (^^)
막걸리 열풍은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전통주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막걸리, 소주만 너무 알려지다보면 '한국 술'의 이미지가 별다른 향기가 없는 (외국 술들은 '향기'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합니다) 값싼 술로 굳어져 버리기 쉽다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전통주는 150여 가지가 나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역시 'Korean liquor' 중에 가장 유명한 건 막걸리, 아니면 소주, 입니다.
품질 뛰어나고, 향기와 맛에서 와인이나 사케에 전혀 뒤지지 않는 우리 술들이 많이 있는데도(문배주, 이강주, 안동소주, 경주법주.....) 역시 홍보와 지식 부족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죠.
국내에서도 소비가 미미한데, 수출은 제대로 될 리가 있을까요.
전통주 보급이 잘 안되는 이유는 전통주 빚는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데 국산 재료를 써야하니, 가격 경쟁력에서 소주에 밀리고 (소주는 수입주정을 물에 섞어 만들죠) 비싼 돈 주고 한국 술 마시느니 같은 값이면 와인이나 양주, 사케를 마시겠다는 사람들의 생각도 한 몫 합니다.
그렇다고 전통주 시장에 대형 업체들이 뛰어들기도 쉽지 않습니다.
현행 유통 체계로는 소주나 맥주를 만드는 대기업이 탁주나 전통주 제조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니 영세업자를 보호하려는 이 규정이, 때로 시장 개척이나 홍보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전통주를 만들지 않는 대기업들이, 자기들의 파이가 줄어드는 걸 두고 볼 리 없겠죠.
정부가 최근 한국음식의 세계화, 를 하겠다며 여러가지 방안을 내놨지만 여기에 우리 술이 빠지면 안될 것입니다.
- 양식이 먼저 전파되고, 와인이 인기를 끌고, 일본 음식이 먼저 자리잡고 나서, 사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걸 보면 술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문화나 음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또 지역별 명주에도 어떤 '스토리'를 담아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와인이나 사케는 지역별로 어떤 특성이 있는지, 또 양조장에 대한 배경 설명, 역사적 전통 등을 강조해 무언가 신비하고 품격있는 술로 보이게 하고 있죠.... '포장'의 중요성이란!
와인이나 사케에 대한 지식은 줄줄이 꿰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 술에 대한 지식은 백지나 다름없는 (저 역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술, 많이 알고, 많이 마십시다 ~ ^^
[편집자주] 남정민 기자는 일요일 아침의 <선데이뉴스 플러스>에서 '남정민 기자의 소비자 리포트'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백화점과 할인점을 누비며 만나는 알짜 생활정보들과 소비자들이 꼭 조심해야할 함정을 여기자 특유의 꼼꼼한 시각으로 전해줍니다. 2002년 SBS 공채로 입사한 남기자는 해맑은 감성과 외모로 개인 블로그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