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기간 동안 신입사원들에게 회사 적응기간을 거치게 한 뒤, 정규직으로 발령을 내는 '수습 제도'.
일단 사원을 채용했기는 했는데, 구체적인 적성과 인성을 평가할 여유가 없었던 회사 입장에서는 다시 재평가할 기회가 되고요.
신입사원 입장에서도 실제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회사의 문화와 업무별 성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악명 높은(?)' 언론사 수습생활을 거친 뒤 정식기자가 된 케이스고요.
그런데 택시업계에서도 이런 '수습' 제도가 있었습니다.
인천의 한 택시회사에서 일하는 박 모 씨가 바로 이런 '수습' 기사입니다.
지난 2007년, 박 씨는 회사측과 수습기간을 최장 1년으로 정하는 채용계약을 맺었습니다.
1년 뒤면 정규 기사로 발령내 준다는 것이죠.
수습 기간 중에는 월급이 정규기사의 절반 정도인 25만 원. 정규기사와 마찬가지로 하루 12시간씩 운전하고, 8,9만 원 하는 사납금을 회사에 꼬박꼬박 납부하다보면, 나머지 수익을 챙긴다해도 떨어지는 돈은 한달 8,90만 원에 불과합니다.
박 씨는 1년만 지나면 정규직이 된다는 희망 때문에 참고 버텼습니다.
그로부터 1년 8개월 뒤, 박 씨는 여전히 똑같은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수습'입니다.
[박 모 씨/수습택시기사 : 수습 기간을 최고 1년으로 정했습니다. 회사에 정규직으로 발령 내달라고 해도 안 내주고요, 처음에 채용한 계약서에 '1년 뒤 정규직 발령'이라는 문구가 써 있지 않냐고 따지니까 계약서를 잃어버렸데요.]
게다가 박 씨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등 일반 비정규직 뿐만 아니라 수습사원이라도 회사가 의무적으로 가입시켜줘야 하는 4대보험에도 가입이 돼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박 씨는 일반적인 수습이 아니라 '유령 수습'이기 때문입니다.
왜 '유령'이라고 말하는지 설명드리겠습니다.
택시업계의 취업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운전면허증 취득->사업용 자동차 정밀적성검사->택시자격증 취득->취업& 취업과 동시에 지자체가 위임한 시도별 택시운송사업조합에 등록->분기별 지자체 신고
박 씨의 경우는 택시회사가 택시운송사업조합에 등록을 하지 않고 고용한 것입니다.
등록을 하지 않으면 자연히 지자체에도 집계가 되지 않습니다. 박 씨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서류상 어디에도 택시기사로 등록돼 있지 않으니 '유령'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모든 근로자에게 의무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 4대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도 적발되지 않습니다.
택시기사들은 택시회사들이 지능적인 꼼수를 쓰고 있다고 폭로합니다.
"수습으로 사용하니 임금도 줄고, 4대보험 의무를 안 지켜도 되니 고용비용도 줄고, 단속도 되지 않고, 회사 입장에서는 1석 3조이니 마구 수습채용을 늘리고 있습니다."
과연 얼마나 '유령수습' 채용이 만연하고 있는지, 한 택시회사를 찾아갔습니다.
[택시회사 직원 : 저희 그렇게 수습이 많지 않은데... 전체 기사 가운데 70명 정도가 정규직이시고, 100명 정도가 수습이시고...]
4대 보험 의무를 지키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나왔습니다.
[택시회사 간부 : 신용불량자나 사회에서 문제가 있던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4대보험 가입하면 이 분들 신원이 알려지잖아요. 빚을 진 경우 법원에 의해서 월급이 차압될 수도 있고요.]
물론, 이처럼 상황이 곤란해 일부러 '수습'을 택하는 기사도 있지만, 모든 수습 기사가 '신용불량자'나 '사회에서 문제가 있던 사람'은 아닙니다.
또, 만약에 채무가 있어서 월급이 차압되더라도 최저생계비 이하로는 차압되지 않아, 한달에 8,90만 원 정도 버는 대부분의 수습기사들에겐 해당사항이 되지 못합니다.
'수습' 기사들은 오히려 회사가 기사들의 약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 모 씨/수습기사 : 정규직으로 발령내달라고 조르면, 회사가 '너 신용불량자 아니냐' 하면서 되물어요. 월급 차압되니까 수습기간 당분간 유지하는게 좋겠다고... 완전히 노예가 따로 없습니다.]
그럼 이런 '수습기사' 채용이 합법적인걸까?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16조에는 수습근로자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습 사용 중인 근로자란 수습사용한 날부터 3개월 이내인 자'
하지만 수습기간에 대한 의무조항이 법령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수습은 3개월 미만의 근로자지만 1년을 넘겨 수습으로 유지해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천지방노동청 관계자 : 법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어요. 불법은 아니에요. 단속 대상이 아닙니다.]
상급기관인 노동부에 물어봤습니다.
"근로기준법 상 처벌 근거가 없습니다. 분명이 4대 보험에 가입시키지 않은 것은 불법이긴 한데, 이부분은 일부러 가입을 안 한건지, 아니면 미룬건지 확인해 봐야 하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과태료와 함께 몰아내면 되고요..."
일단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는 게 당국의 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근로자 관점이 아니라 사업자 관점에서 불법이 아닌지 취재해봤습니다.
실제로 택시업계에서는 과거에 유행했던 '도급택시 관행'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면서, 그 빈자리를 매우기 위해 '수습택시'를 활용하고 있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선 '도급택시'가 무엇인지 짚어보고 글을 잇겠습니다.
'도급택시'는 택시운송사업조합에 등록돼 있지 않은 기사에게 택시를 빌려주고, 대여비 조로 사납금을 챙기는 운영방식을 말합니다.
도급기사는 사납금을 뺀 나머지 돈을 챙기는데, 정해진 시간에 많은 돈을 벌어야되니 자연히 과속, 난폭 운전을 하게 돼 사고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또, 기사의 신원이 당국에 의해 확인되지 않다 보니 범죄에 악용될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홍대 여사원 납치 살해사건에 '도급택시'가 사용돼,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죠.
이처럼 부작용이 커, 도급택시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수습택시'도 택시운송조합과 지자체에 등록이 안 된 '미등록, 유령'기사가 운전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납금을 내는 방식도 같아, 어쩔 수 없이 난폭, 과속 운전을 하게 될 때가 있죠.
기사 신원 확인이 안 되다 보니, 범죄 악용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가 약식이라도 근로계약을 맺고,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받는 이상, 완전한 도급으로 볼 수 없다는게 국토해양부의 설명이었습니다.
[국토해양부 : 도급 단속을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보입니다. 아직까지 단속한 경우는 없습니다.]
결국 당국은 '법의 헛점'을 핑계로 손을 놓고 있는 셈입니다.
당국의 무관심 속에 시민의 발인 택시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유령 수습'기사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 보도가 나간 뒤, 한 양심적인 택시업체의 사장님은 모든 '수습기사'가 다 악조건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4대 보험도 모두 가입시켜주고, 기간이 지나면 정식으로 발령내 준다고 하시면서, 모든 택시업체가 비양심적이지는 않다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택시 업계의 구인난 때문에 수습채용이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을 보내주신 사장님도 계셨습니다. 정규 기사를 채용하려 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는 택시를 놀릴 수도 없어서 수습을 채용한다는 것이죠.
노동계의 의견도 하나 첨부하겠습니다. 한 노동계 인사는 일반 정규 택시기사들의 임금이 너무 낮고(오는 7월1일까지는 '최저임금법'의 적용도 받지 못합니다.) 노동조건이 열악해 취업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수습을 채용한다'는 회사의 입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사가 '노동조건'에 초점을 맞추다가 난데 없이 '사고, 범죄 위험성'이 나왔다며 구성상 무리가 있었다며 내용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택시가 '근로조건' 관점에서만 볼 수 없는 대중교통수단으로, 이를 사용하는 시민이 관심을 갖는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해야 한다는 기자의 판단이 작용했습니다.
다시 한 번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주] 김형주 기자는 현재 경제부에서 노동부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2004년 공채로 입사한 김기자는 이전에는 사회2부 사건팀에서 활약했습니다. 훤칠한 키에 핸섬한 외모로 인기가 많은 그는 취재현장에서 만난 인간 군상들과 사회 부조리 등 보고 느낀 많은 것들을 담은 개인 블로그도 운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