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입니다. 흔히 꽁꽁 얼어붙었던 만물이 따사로운 봄햇살을 받아 눈녹듯 풀린다죠. 사사건건 꽉 막혀있는 우리 정치권도, 경제위기로 잔뜩 쪼그라든 우리네 살림살이도 봄을 맞아 활짝 풀리길 기대해봅니다.
오늘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관련한 민주당의 공천갈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오늘 글은 분량이 조금 많습니다.)
정동영 전 장관이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에서 4월 재보선 '전주 덕진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동안 고향인 '전주 덕진'을 놓고 출마를 하니,안하니 말이 많았습니다만, 정 전 장관 입장에서는 쉽고도 어려운 선택을 한 셈입니다. (**이와관련해 2월 3일 취재파일 '정동영, 명분이냐 실리냐" ☞바로가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정 전 장관의 출마 선언에 대해 민주당내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습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마뜩잖은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른바 386 신주류로 분류되는 소장파 의원들도 정 전 장관의 출마 선언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 전 장관의 전주 덕진 출마 선언으로 '호남 개혁공천-수도권 승리'라는 재보선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 것은 물론, 4월 재보선 구도를 '反MB 심판론'으로 몰고가려던 구상도 흐트러지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정동영 전 장관과 가까운 의원들은 "판단은 국민의 몫이며, 정 전 장관이 들어와야 민주당의 인물난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며 재보선 출마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 정 전 장관측 의원들은 당 지도부와 386소장파 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정 전 장관을 희생시키려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런가운데 17일엔 민주당 지도부가 '전주 덕진' 지역구와 '인천 부평을' 지역구를 4월 재보선 전략공천 지역으로 확정해버렸습니다. 이 두 지역구에 대해서는 후보자 공모를 받지않고 지도부가 전략적으로 판단해서 후보자를 낙점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동영 전 장관 입장에서는 후보자 공천 신청도 못하게됐고, 당 지도부의 입만 쳐다봐야하는 상황이 돼버린 셈인데요. 이 때문에 당 지도부가 사실상 정 전 장관에 대해 공천배제 쪽으로 기운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들도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한 당 지도부의 공천배제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보도를 하고있습니다. 물론 충실한 취재를 통한 기사들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 전 장관의 덕진 출마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자들의 사감(私感)도 작용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아직까지 정동영 전 장관의 공천 여부에 대해 결정된 게 없다고 말합니다. '전주 덕진'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한 것도,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당 지도부가 중요한 정치적 판단을 하기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아직은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해 공천배제'라고 말하기에는 섣부르다는 생각입니다. 왜냐, 정 전 장관을 공천에서 배제할 경우 몰아닥칠 후폭풍을 감안해보면, 당 지도부가 쉽게 공천배제를 결정내릴 수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정동영 전 장관을 공천에서 배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들을 생각해볼까요.
1. 당내 분란 격화
- 당 지도부를 포함한 신주류와 親정동영측 간에 정면충돌 가능.
2. 적전 분열, 재보선 차질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내 분열로, 오히려 4월 재보선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큼.
3. 정동영 전 장관 무소속 출마
- 정 전 장관이 정치생명을 걸고 무소속 출마 가능. 이 역시 4월 재보선에 민주당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가능성이 큼. 정 전 장관이 무소속 출마해서 당선될 경우 당 복귀를 놓고 또 한차례 내홍 불가피. (**일부에서 신당창당설까지 나오지만 개인적으로는 희박하다고 봅니다.)
4. 지도부 책임론 제기
- 당내 분열을 수습하지 못하고 재보선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지도부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 있음.
어떻습니까? 자칫 민주당의 공멸로 이어질 상황들이 불보듯 뻔하게 예상되는데도, 민주당 지도부가 정 전 장관을 쉽게 내칠 수 있을까요? 민주당 지도부로서는 '정 전 장관을 공천에서 배제할 경우 나타날 여론의 움직임'이 판단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전 장관을 내쳤을때, 여론이 '잘했다'라고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면, 위의 상황들을 감내하고라도 공천에서 배제하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동영 전 장관이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도 아니고, 여론이 두부 자르듯 쉽게 나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제 생각에는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 전 장관이 윈-윈 하는 방식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 상황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하루하루 변해감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여야 협상을 봐도 그렇습니다. 극단적으로 몰린 나머지 다 죽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벼랑끝에서 극적인 타협이 이뤄지지 않습니까?
언뜻보면 민주당 지도부의 '전주 덕진 전략공천' 결정이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한 공천배제쪽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고, 마치 정동영 전 장관을 향해 공천을 받지 못하든지, 수도권인 '인천 부평을'로 나가든지 양자택일하라는 식의 극단적인 압력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이는 정동영 전 장관으로서도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요구일 것입니다. 자기 입으로 전주덕진에 출마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인천 부평을'로 나가겠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순순히 공천배제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민주당 지도부와 정 전 장관이 극단적 상황에 몰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정세균 대표나 정동영 전 장관, 모두 극단적인 결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자칫 공멸로 가는 길임을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동영 전 장관은 오는 22일 오후에 귀국한 뒤, 다음주 초에 정세균 대표와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이 공천 문제에 대해 담판을 짓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최대한 윈-윈의 해법을 모색하기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좀 더 그려보자면, 이 자리에서 정동영 전 장관으로서는 자신이 전주 덕진에서 공천을 받아야할 충분할 이유를 제시해야할 것입니다. 이와함께 잠재적 대권경쟁자인 정세균 대표의 기득권을 흔들지 않겠다는, 다시말해 자신이 재보선에 당선돼 당에 복귀하더라도 정대표를 흔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할 것입니다.
특히 공천을 받는 대신, 자신이 양보할 수 있고 정세균 대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반대급부를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앞으로 주목해야할 부분은 바로 이 '반대 급부'가 무엇일까에 모아지지않을까 생각됩니다.
'반대급부'에는 어떤게 있을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가깝게는 10월 재보선 공천, 멀게는 내년 지방선거 후보 공천 문제에서 자신은 손을 떼고, 정세균 대표에게 모든 지분을 맡기겠다는 약속이 될 지도 모릅니다. 특히 정동영 전 장관과 정세균 대표 모두 지역구가 '전북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해야합니다.
또다른 반대급부가 있을까요? 조금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정세균 대표 입장에서는 정동영 전 장관이 납득할만한 반대급부도 제시하지않고 무조건 공천을 달라고 요구할 경우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될 것입니다. 정동영 전 장관의 공천문제, 그리고 이를 둘러싼 민주당내 논란은 4월 재보선 판도는 물론 이후 민주당의 진로와 여야 관계를 결정지을 중대한 변숩니다.
민주당은 가급적 4월 2일까지 재보선 후보 선정을 마감한다는 계획입니다. 정동영 전 장관의 공천을 둘러싼 민주당 공천갈등은 다음주초 정세균, 정동영 두 정치인의 담판이 중대한 고비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90년대 SBS 사회부의 민완기자였던 정준형 기자는 법조팀과 경제부 등을 거쳐, 사회부 사건팀을 이끄는 시경 캡을 역임한 뒤 지금은 정치부 야당팀의 현장반장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때론 거칠면서도 정이 듬뿍 넘치는 인간미가 담긴 뜨끈뜨끈한 기사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