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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박 반장]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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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박병일 기자입니다. 오늘은 조금 소프트한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남자들이 둘 이상만 모이면 군대 얘기나 축구 얘기를 나눈다고 하고, 여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라고 합니다만, 정치부 기자들도 선후배 간에 술자리를 갖게 될 때마다, 선배는 과거 국회 얘기를 안주거리 삼아 들려주고 후배 기자들은 몇 번씩 들었던 얘기를 또 들어야 하는 고충을 감내하곤 합니다. 40대 이후의 장년층에게는 익숙한 풍경들이 지금 세대들에게는 좀 생경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런 국회의 뒷 얘깃거리를 꺼내 볼까 합니다. 

과거의 국회와 요즘의 국회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15대,16대 국회와 지금의 국회를 비교해보면 달라진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국회의원들의 선후배 관계에서부터 달라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과거에는 의원총회장에 가면 항상 뒷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중진들을 위한 자립니다. 눈치 없는 초선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뒷자리에 앉아 있으면 여지없이 선배 의원들의 눈총과 질책이 쏟아집니다. 초선 의원들은 감히(?) 의원총회에서 발언대에 서지도 못했습니다.

16대 국회 당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와 의원들이 단체 사진을 찍을 때였습니다. 사진 앵글에 모두 잡히기 위해 바싹바싹 붙어서라는 사진사의 요청에 의원들이 좌우로 바싹 붙어 설 때였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초선 의원이 있었습니다. 맨 끝에 서면 사진에 잘 나올 것 같지 않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이회창 총재 옆 자리에 공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슬그머니 끼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조금 늦게 도착한 당시 김기배 사무총장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물론 장난스러운 터치 정도) 맨 구석자리로 밀려났습니다. 결국 그 의원은 몸의 절반만 사진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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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장에서도 맨 뒷자리에 앉은 당 지도부가 앞에 앉은 초재선 의원들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여야 원내대표 간에 비공개 회담이 열릴 때 회담 결과를 기다리며 옆 방 소파에 젊은 재선 의원들이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환갑을 훨씬 지난 한 초선 의원은 히터위에 걸터앉아 기다리던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물론 '선수'의 위계는 남아 있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릅니다. 의원총회장에는 일찍 들어온 초선 의원들이 뒷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뒤늦게 도착한 중진 의원들은 아무 말 없이 앞자리로 가서 앉습니다. 발언도 대부분 초재선 몫입니다. 중진들은 가만히 듣고 있을 뿐입니다. 잘못 말했다가는 "저 노인네..지금이 어떤 시대인데."하고 후배 의원들이 생각할까 두려워하는 경우도 목격됩니다.

본회의에 표결을 위해 비상대기령을 내려 놔도 원내지도부에 신고도 하지 않은 채 결석하거나 지각하는 일이 다반삽니다. 지난 3일 본회의 표결에서 의결정족수조차 채우지 못했던 여당의 모습이 그 일례입니다.

이런 변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과거 계파 정치가 없어진 탓일 겁니다. 돈과 공천으로 계파를 형성했던 과거에는 선배의원에게 잘못 보이면 바로 '아웃'입니다. 반면, 지금은 일단 돈 정치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개정으로 돈 쓰기가 어렵다보니 돈줄을 통한 줄 세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겁니다. 다만 공천의 영향력에 대한 줄서기는 여전합니다. 그러나 국민들로부터 배척받는 국회의원은 아무리 줄을 잘 서도 다음 공천을 보장받기 어렵다보니 자기 할 말은 하는 그래서 의원총회나 본회의에서 가끔씩 돌출 발언들이 쏟아지는 일이 생기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도 17대 국회 이른바 108번뇌라고 불릴 만큼 초선 의원들이 대거 입성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일 겁니다. 탄핵의 바람을 타고 당시 열린우리당에는 초선 의원들이 대거 입성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계보정치 타파와 맞물리면서 초선들의 집단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화됐습니다. 18대 국회에서도 133명이나 되는 초선 의원들이 입성하면서 서서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가며 영향력을 늘리고 있습니다. 중진 의원들의 입장에서는 "아~~ 옛날이여"하겠지만 우리 국회가 선진화돼가고 있는 한 측면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기자들의 취재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과거에는 유력 정치인들의 집에 새벽마다 기자들이 찾아 다녔습니다. 제 선배 기자들은 아침은 물론 밤에도 툭하면 정치인 집에 찾아가 술잔을 나누며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계파와 계보정치가 심할 때니, 유력 정치인 5-6명을 마크하기 위해 선후배 기자 할 것 없이 새벽마다 자기가 맡은 정치인 집에 찾아가 아침을 같이 먹곤 했습니다.

저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한나라당 총재였던 시절, 가회동 자택을 새벽마다 찾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정치부를 한 2년 가까이 떠나 있다가 정치부로 복귀해 출입처로 배정받았던 곳이 한나라당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 총재가 가회동 자택을 개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었고, 과거에 했던 습관대로 새벽에 가회동 이회창 총재 자택의 초인종을 눌러댔습니다. 자택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보좌진들의 정중한 내침에도 불구하고 매일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고 결국 사흘 만에 문을 여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총재와 단둘이 아침 밥을 먹게 됐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말진 (보통 4-5명의 기자가 출입하는데 그중 막내) 기자로서 하나라도 더 알아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이 총재로부터 들은 대답은 "자~ 국이 식습니다. 빨리 드시죠"였습니다. 

"내일부터 오지 말라"는 보좌진들의 요구에도 새벽마다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고, 이 총재와 아무런 대화도 없이 그저 밥만 먹었습니다. 이 총재는 엄청난 속식가입니다. 따라서 단 둘이 마주앉은 아침 식탁이었지만 이 총재와 만나는 시간은 불과 2-3분에 불과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이 총재는 "자~ 그럼.."하면서 일어나 내실로 들어갔고, 저는 보좌진들과 커피한잔을 하고 당사로 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도 사나흘 동안 저는 오기가 생겨 새벽마다 이 총재 자택을 기습했고, 대화 한 마디 없는 독대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이 총재가 제게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당시 제 손 가락에 끼어있던 묵주 반지를 보고는 "박 기자! 세례명이 뭐요?" "네, 스테파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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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로 돌아와 당시 여당 반장이었던 김인기 선배 (현 파리 특파원)께 당당히 보고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 : "김 선배, 드디어 昌이 입을 열었습니다"

김 선배 : (반기면서) "그래? 뭐라던?"

나 : "네.. 제 세례명을 물었습니다"

김 선배 : "그게 다냐?"

나 : "네"

김 선배 : "일주일 가까이 가 가지고 들은 얘기가 네 세례명이 뭐냐 그거냐?"

나 : "네"

김 선배 : "......"

그러고 나서도 전 계속 새벽마다 이 총재 자택 초인종을 눌러댔습니다. 그러던 중 이 총재가 각사 반장들과 식사자리에서 "SBS 박 기자는 덩치에 비해 밥은 조금만 먹대"라고 말한 사실이 전해졌습니다. 두 주 넘게 새벽 날품을 팔아 아무런 기사거리를 얻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전 이 총재에게 저를 각인시키는 성과는 거둔 셈입니다. 이 총재의 이런 발언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 다음날부터는 모든 언론사의 막내 기자들이 가회동 문을 두드렸고, 결국 식탁 자리가 모자라 거실에도 따로 밥상을 차려내야 하는 상황까지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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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한 달 쯤 뒤, 아무런 기사거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된 기자들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 총재도 가회동 자택을 다시 개방하지 않기로 해 버렸습니다.

여하튼 이런 동 트기 전 유력 정치인들을 괴롭히는 새벽 취재는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기자들과 정치인들 간의 신뢰관계도 많이 약해진 느낌입니다. 과거에는 정치인들로부터 오프를 전제로 얘기를 들으면 약속을 지켰고, 그런 신뢰관계가 쌓이면서 더 많은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인들도 좀처럼 기자들에게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매시간 아니 막 바로 인터넷을 통해 기사화되다보니 그도 그럴 만도 합니다. 언론 매체가 늘어나고 경쟁관계가 심화되면서 생긴 또 다른 풍경입니다.

결국, 선후배 의원들 사이의 약해진 위계 관념...기자들의 달라진 취재 관행.. 이 모든 것은 국회가 선진화되는 한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만큼 '정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에 글을 통해서 전해 드렸듯이, 여당과 야당의 원내총무가 짜고 자기 당 대표를 속이고 연기하는 경우는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 됐습니다. 여와 야의 원내대표를 비롯해 중진들의 막후 조율이 사라지면서, 여와 야의 최소한의 신뢰관계도 무너지고 여와 야가 제동장치 없이 마주 달리는 열차마냥 대치와 충돌로 치닫기 일쑵니다. 

여와 야의 몸싸움은 과거보다 더 격렬해졌습니다. "모 아니면 도"식의 대치와 충돌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그날 밤 돼지 삼겹살에 소주 잔 기울이며, 서로를 위로하고 다음날 또 다시 전쟁터로 향하던 풍경은 이제는 위선으로 몰려 더 이상 볼 수 없는 장면이 됐습니다.

돈 정치.. 구태 정치.. 계보 정치가 없어져 가면서 우리 국회가 나아지고 있다지만, 여야가 극한 대치로 치달을 때마다 취재를 끝내고 후배들과 술 한잔 할라치면 꼭 과거 국회 얘기를 안주거리로 꺼내드는 이유는 아무래도 '사라진 정치'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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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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