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기간동안 방송이나 신문에서 관련 소식이 쏟아져 나왔죠.
김 추기경의 장례 미사는 금요일 오전 10시라는 시간대에도 지상파 방송 3사가 모두 생중계를 했고, 3사 합치면 20% 가까운 시청률이 나왔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하지만, 처음 보는 가톨릭 전례가 낯설었던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몇가지만 간단하게 소개할까 합니다.
◎추기경이란?
가톨릭은 사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뉘고 성직자는 또 평신부와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으로 나뉘지요.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서약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순명'입니다.
'절대적인 복종'을 서약하는 것이죠.
원래는 신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인데, 예수가 수제자 베드로에게 교회를 다지라고 한 것으로 이해하고,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라 믿고 있으니 결국 이는 '교황-추기경--대주교-주교-평신부' 로 이어지는 조직에 대한 절대적 복종으로 연결됩니다.
가톨릭 신부는 서품을 받으면 우리가 흔히 보는 까만색 치마 같은 옷을 입고 다닙니다.
'아래까지 내려오는 옷'이란 뜻의 프랑스어 soutane의 한국식 발음 '수단'이라고 부르는데요.
검은색은 '사제로서 자신을 신에게 봉헌하고 속세에서의 삶은 죽었다'라는 걸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게 주교가 되면 자색, 추기경이 되면 진홍색으로 바뀌는데요.
붉은색 계열은 순교를 의미합니다. 즉, 고위 성직자가 됐으니 더 큰 희생을 하겠다는 뜻이지요.
추기경이 된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만, 교황이 될 수도 있고, 교황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도 생기지요.
가톨릭 사제들의 전통인데요.
서품받을 때 수단 위에 입었던 흰 색 제의 그대로 관으로 들어갑니다.
평생 수의를 걸치고 사는 셈인데, 사제로 평생을 살았으니 그대로 자신을 신에게 봉헌한다는 의미지요.
사제들은 서품 받을 때 흰 제의를 걸치고 땅에 엎드려 있는데요. 이는 절대자 앞에서 자신을 가장 낮은 곳으로 낮추고, 가장 낮은 곳을 지향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은 최연소로 추기경이 됐다고 하던데요?
네, 1969년 47세의 나이로 추기경이 됐습니다. 당시 최연소였죠.
김 추기경은 해외 출장 중 일본에서 상지대학 재학 중 스승에게 전화를 받고 서임 소식을 들었다고 회고하며 서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추기경 서임은 전적으로 교황의 권한인데요. 특별히 T/O가 있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이 돌아가셨다고 한국인 추기경이 새로 나올 거라는 장담은 하기 어렵지요.
가톨릭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김 추기경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추기경이 될 수 있었던 건 당시 교황청의 분위기 덕이라고 합니다.
60년대는 가톨릭 역사에서 사실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가톨릭의 현대적 쇄신이 이뤄진 시기이거든요.
본래 '가톨릭(catholic)'이란 이름은 '보편적'이란 뜻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가톨릭 교회에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왔죠. 그래서 60년대 이전까지는 전세계 어느 성당에 가더라도 '라틴어'로 미사를 해왔습니다.
지금도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가면 라틴어를 배우긴 하지만, 과거 김수환 추기경이 신학교에 다닐 땐 일상 기도도 모두 라틴어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젊은 신부들보다 원로 신부님들이 외국어를 더 잘한다고 하네요. ^^;;
이런 경향 때문에 추기경도 이탈리아에 집중돼 있었는데요. 62년부터 65년까지 가톨릭 교회 현대화를 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란 걸 엽니다. 이때 교회는 보다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세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이른바 '현대화' 작업에 들어가는데요.
그 일환의 하나로 각 지역에 맞게 사목을 하게 됐습니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존중하고, 미사도 모국어로 올리게 됐죠. 이런 차원에서 아시아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고요. 한국의 경우 독특하게도 자생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여 수많은 순교를 통해 뿌리를 내린 점등을 감안해 김 추기경이 추기경으로 서임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톨릭 장례에서 염불 소리 비슷한게 들리던데요?
이것도 아까 말씀드린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산물입니다.
2차 공의회에서 교회의 모든 면에 토착화를 도입했거든요. 그 이전이었으면 이런건 불가능했겠죠.
이 기도를 '연도'라고 하는데요. 전세계 가톨릭 교회에서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기도입니다. 타령 같기도 하고 염불 같기도 한 전통적인 가락에 맞춰 죽은 이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거죠. 개인적으로 연도를 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 천주교는 18세기 후반, 서양 학문에 관심을 가졌던 젊은 사대부 학자들의 학문적 호기심에 의해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리학 유일주의에 빠져있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 되면서 수많은 순교자를 낳았죠.
한편으로 이렇게 순교자가 많이 생긴건 사실 로마 교황청의 책임이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장례예절'에 있었습니다.
신위를 모시고 절을 하는 것을 당시 교황청은 '미신 숭배'라 단정했습니다. 여기서 조선의 천주교 선각자들은 많은 고민을 하게 됐고 결국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야 했는데요. '보편성'과 문화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낳은 비극이지요.
그렇게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이 젊은 나이에 군문효수되고 2백년이 지나서...한국 최초의 추기경은 그렇게도 문제가 됐던 한국 전통의 장례 예절이 가톨릭 양식과 조화된 방식으로 장례를 치뤘습니다.
역사에 있어 가정법은 언제나 부질없는 짓이지만... 로마 교황청이 2백년 전 조금만 깨어있었다면...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