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기증 이후 장기기증 서약자가 크게 늘면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대한이식학회에 따르면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전국적으로 1만1천여명에 달하지만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자는 고작 256명으로 전년도(148명)에 비해 1.7배가량 증가하는데 그쳤다.
한마디로 장기이식 대기자에 비해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식 대기자들은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중국 원정이식 등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김 추기경의 각막기증에서 시작된 이번 장기기증 `열풍'이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들에게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특히 김 추기경의 각막 이식으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안구기증의 경우 이식 대기자들의 기대감이 더욱 높아가고 있다.
◇ 장기기증 서약 하루 평균 8배 급증 = 21일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따르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기증 이후 장기기증 서약을 하는 사람의 숫자가 하루 평균 8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KONOS 홈페이지를 이용해 장기 기증을 서약한 사람은 올해 들어 지난 2월 초까지 하루 평균 6명에 불과했으나 김 추기경의 각막 기증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17일에는 24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어 18일에는 28명으로 증가했고 19일에는 평소의 8배에 가까운 45명에 달했으며, 20일도 오후 5시 현재 35명을 기록하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도 이 같은 상황은 마찬가지로 지난 16일 김 추기경의 선종 후 사흘 만에 온라인 장기기증 등록자 수가 평소의 3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선종 이튿날인 17일 본부 홈페이지(http://www.donor.or.kr/)를 통해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은 평소 25명의 6배인 153명이었고, 18일에는 10배인 250명으로 늘었다. 특히 사흘째인 19일에는 무려 740명이 등록증을 신청했다.
안정임 KONOS 장기이식기획팀장은 "추기경의 선종 이후 장기기증을 서약하는 사람이 실제로 늘어났다"면서 "장기 기증을 희망한 사람들이 사망하면 가족들은 대부분 실제 기증에 동의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 각막기증 큰 관심 = 김 추기경의 각막이 2명의 환자에게 이식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장기기증 중에서도 각막기증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내 각막이식수술의 3분의 1 가량을 하는 강남성모병원 안센터에는 김 추기경 선종 이후 각막기증 문의전화가 하루 수십 통씩 걸려오고 있다.
20일 현재 기준으로 전국의 각막기증 신청자는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의료계는 추산하고 있다.
각막이식술은 눈 한가운데에 있는 검은 동자인 각막을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로 꼼꼼하게 꿰매 이식하는 수술법으로 보통 2~3시간이 걸린다. 이 수술의 성공률은 다른 장기 이식에 비해 높은 편으로 수술에 큰 문제가 없으면 4-5일만에 퇴원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말 현재 국내 각막이식 대기환자는 3천600여명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2007년 국내 뇌사자와 사망자로부터(사후 기증) 각막을 이식받은 환자수는 각각 181명과 224명에 불과하다. 2007년 국내 각막이식수술 628명 가운데 국내 기증된 각막을 이식받은 305명을 제외한 나머지 323명은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해외로부터 수입한 각막을 이식한 셈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각막을 이식받으려면 평균 1~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국내 각막이 부족하다 보니 수입산 각막을 쓰는데 따른 비용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통 국내에서 기증된 각막을 사용할 때는 수술와 입원 치료에 따른 환자부담이 200만-300만원이면 되지만 수입산 각막을 쓰려면 2배에 달하는 600만-700만원의 비용을 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각막은 사후기증(24시간 이내)이 가능하고 혈액형이나 유전자에 관계없이 이식할 수 있는 만큼 기증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 관건은 실천 의지 = 전문가들은 일단 장기기증 서약이 늘어난 만큼 실제 이식대기자에게 이식될 수 있는 장기가 늘어날 것으로 긍정적 기대를 하고 있다.
안정임 KONOS 장기이식기획팀장은 "생전에 장기 기증을 서약한 사람이 실제 장기를 기증할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최대 20배 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약자 모두가 장기이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식 가능성이 높은 장기는 그만큼 증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장기기증 서약이 이식 대기시간 단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증 서약자들의 실천의지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는 장기기증 서약자들이 실제 기증 단계에서 서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환자 본인 의사와 달리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아 실제 이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장기기증 서약자가 뇌사상태 또는 사후에 장기를 기증해 이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2% 남짓에 불과하다는 보고도 있다.
강남성모병원 안센터 김만수 교수는 "현재 각막 기증 신청이 늘어나고 있어 전체적으로 각막 이식 적체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각막 기증은 사망 후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지금 당장 대기 기간 감소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의 안과 주치의였던 이 병원 주천기 교수는 "문의전화가 급증하고, 서약이 늘어난 점을 볼 때 각막을 비롯한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는 매우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높아진 사회적 관심을 실제 사후 장기이식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운전면허증 뒤에 장기기증 의사를 명시토록 하고, 행려환자들의 사후 각막을 적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