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에서 최고 정치지도자나 저명인사의 죽음을 표현하는 데는 'die' 아니면 'pass away'와 같은 말로 족하다.
하지만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의 신분이나 종교, 직업 등에 따른 죽음의 표현이 무척 다양하다.
중국 고대 의례를 집약한 예기(禮記) 중 세세한 예의범절을 기록했다는 의미를 지닌 곡례(曲禮) 편을 보면 같은 죽음이라도 천자는 '붕'(崩), 제후는 '훙'(薨)이라 하고, 대부(大夫)는 '졸'(卒), 사(士)는 '불록'(不祿)이라 하고, 일반 서민 백성은 '사'(死)라 한다고 했다.
이런 가치관에 투철했음인지, 삼국사기는 신라, 고구려, 백제의 모든 왕에 대해서는 죽음을 훙(薨)이라 적었다. 같은 맥락에서 삼국사기는 김유신의 죽음에 대해 "(문무왕 13년<673>) 가을 7월1일에 유신이 졸했다"(秋七月一日 庾信卒)고만 적었다.
하지만 삼국시대 당시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는 이와는 조금 다른 사정이 보인다.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견한 백제 무령왕릉 출토 금석문에서는 그의 죽음을 '붕'(崩)이라 적었다.
이런 발견에 지금까지도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많은 이가 백제는 자주성을 발휘한 국가였음을 입증하는 증거로 들곤 하지만, 너무 멀리 나간 감이 없지 않다.
동시대 중국 고분에서 출토된 금석문에서도 죽은 이가 황제가 아님에도 그것을 崩으로 표현한 사례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각 종교에서 죽음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차이가 적지 않다.
널리 알려졌듯이 불교에서는 반니원(般泥洹)ㆍ반열반(般涅槃)ㆍ입적(入寂)ㆍ원적(圓寂)과 같은 표현을 쓴다. 반니원이나 반열반은 니원(泥洹), 열반(涅槃)이라 줄이기도 한다. 같은 발음(산스크리트어)에 대한 다른 소리옮김이다.
입적이나 원적이란 말은 그것을 뜻으로 새겨 표기한 것으로 그냥 멸(滅)이라고 하거나 멸도(滅度)라고 하기도 한다.
불교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가 입적하던 그 순간을 전하는 경전으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약칭 열반경)이나 대반니환경(大般泥洹經.약칭 니환경)이 있으며, 이 경전들이 대승불교에서 특히 중시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불교의 남다른 관심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불교 승려의 죽음과 관련해 지금도 흔히 쓰는 '나이'로 세수(世壽)에 대비한 '승랍'(僧臘)이란 표현이 있다. 출가한 햇수가 바로 승랍인데, 저명한 불교승려의 죽음을 전하는 언론의 부고 기사에서는 세수와 승랍을 구별해 사용한다.
사실 불교 교단에서는 세수보다는 이 승랍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 통해 성직자의 선후 관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한데 이 승랍에서 '납'(臘)이란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 해 1월1일 이후 12월31일(양력 기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 인도 불교에서는 수계(受戒)한 시기부터 다음해 7월15일까지를 말했다.
불교 집회에서는 좌석 순서가 이 승랍에 따라 정해지기 마련인데 지금도 불교교단에서 흔히 사용하는 '상좌'(上座)란 말은 그가 차지하는 곳이 상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도교에서는 그 성직자나 교인의 죽음을 선화(仙化), 승선(昇仙), 등선(登仙), 시해(尸解)와 같은 말로 표현한다. 모두 육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하늘로 훨훨 날아다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을 함축한다.
도교신학이 추구하는 인간의 절대 이상인 '선(仙)' 즉, 신선(神仙)은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해 또한 죽어 시체(육신)라는 몸체에서 벗어나 영혼이 자유로워졌다는 뜻이다.
천주교 성직자인 김수환 추기경의 타계를 '선종'(善終)이라 표현한다. 그의 죽음을 전한 영어 기사는 'die' 혹은 'pass away'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끝 마무리를 잘 했다"는 선종 자체의 의미가 영어 표현에서는 찾을 길이 없다.
이는 역으로 선종이란 말이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천주교 문화가 자체 계발해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라는 증명이기도 하다.
이 선종이란 말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에 의하건대, 제일 먼저 등장하는 곳은 장자(莊子) 중에서도 장자 그 자신이 썼다고 간주되는 내편(內篇)의 대종사(大宗師)라는 곳이다.
이곳에서 맹자와 동시대 인물인 장자는 대괴(大塊) 즉, 대지가 지닌 생명력을 찬탄하기를 "늙게 함으로써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고 죽음으로써 우리를 쉬게 한다. 그런 까닭에 자기 삶을 잘 사는일이 곧 자기 죽음을 잘 맞이하는 길이다(故善吾生者, 乃所以善吾死也)"라고 했다.
이에서 선종과 그 의미가 매우 흡사한 '선사'(善死)라는 표현이 보인다. 이에 바로 뒤이어 장자는 "일찍 죽는 일에도 잘 대처하고, 늙는 일에도 잘 대처하며, 시작하는 일에도 잘 대처하고, 끝맺는 일에도 잘 대처하면(善始善終) 사람들이 그를 본받게 된다"고 덧붙인다.
전후 문맥을 볼 때 선종은 늙음, 혹은 죽음과 긴밀히 연동돼 있음은 분명하다.
이후 선종이라는 말은 쓰임이 광범위해져 마침내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천주교계에서는 성직자 뿐만 아니라 세례를 받은 일반 신도의 죽음을 표현하는 데도 쓰이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의 죽음을 언제부터, 누가 '선종'이라 표현하기 시작했는지는 현재로서는 추적이 쉽지 않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