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 푸틴도 불황의 파고는 비켜가지 못했다.
경제위기로 러시아의 사회불안이 지속되면서 9년간 강권정책을 펴온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이 1일 러시아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에너지 주도의 성장을 구가하던 러시아가 최근 대규모 실업사태와 인플레이션에 직면하자 푸틴 총리와 그의 정치 후계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는 것.
지난달 31일에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러시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푸틴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위대에 합류한 예브게니 안티포프(21.학생)는 "푸틴이 다보스에서 (러시아) 경제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한 데 정말 화가 났다"면서 "권리를 지키는 것은 의무"이기 때문에 반정부 집회 참여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안티포프는 "내 아이들이 강제 수용소가 아니라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위는 지금껏 '푸틴 비판'에 신중했던 공산당과 러시아 극동의 불만 계층을 중심으로 한 시민조직인 '타이거(Tiger)'가 주도했으며 정당활동이 금지된 '국민 볼셰비키당'의 에두아르드 리모노프 대표를 포함해 수십 명의 집회 참가자가 연행됐다.
한국과 일본자동차 수입업체가 많은 극동 지역에서는 최근 러시아 정부가 자국 자동차 업체를 보호한다며 수입차 관세를 최고 80%까지 인상하자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푸틴 총리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극동 지역 시위대를 해산하려 했지만 현지 관리들의 항명에 부딪혔고, 모스크바의 특수 진압부대를 투입하려는 뜻도 좌절됐다.
이에 격노한 푸틴은 연해주 지역의 신임 행정책임자인 안드레이 니콜라예프를 파면하려 했지만 예비역 장성이자 국가두마(하원) 국방위원장 출신인 니콜라예프는 극동과 관련한 크렘린궁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푸틴의 압박을 물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항명은 러시아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니콜라예프에게는 자신의 파면에 반대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라는 '뒷배'가 있었다.
푸틴 총리는 지난해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권좌를 물려주고 '양두(兩頭)체제'를 구축했지만 경제위기와 함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경기부양 지연을 비판하는 등 러시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푸틴의 계획이 조금씩 틀어지는 상황.
크렘린의 한 소식통은 "메드베데프와 푸틴의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서방 외교관은 또 "금융위기로 메드베데프가 푸틴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푸틴은 더이상 보스 중의 보스(capo di tutti capi)가 아니다"고 평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