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국회 폭력을 근절하겠다며 <특별법> 제정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국회 폭력사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궁지에 몰아넣음과 동시에 2월 입법전쟁을 앞두고 민주당의 물리적 저항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직권상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국회 폭력 사태는 여당이 직권상정을 하려 하면서 원인제공을 하는 바람에 생긴 불가피한 저항이었다는 주장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2차 입법전쟁에서 민주당의 저항의 수단을 묶어 놓으려는 한나라당의 계획에 맞서 <직권 상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포석으로 이해됩니다.
여야 모두 정의를 외치면서도 이렇게 내면에는 2월 입법전쟁을 앞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야의 이런 작업들이 보다 더 치열하게 전개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국회법이나 형법만으로도 국회 폭력이나 여당의 날치기를 충분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야 모두 그동안 이를 무시하거나 교묘히 우회하면서 현행법들을 무력화시켜왔던 그릇된 관행의 악순환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될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여야가 현재 어떤 정치적 계산을 가지고 접근하건 간에 더 치열하게 이 문제를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여당이 추진하는 <폭력방지특별법안>이나 야당이 추진하는 <직권 상정> 강화 방안이나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아니 무모하게 추진하는 측면이 엿보입니다.
우선 한나라당은 지난주 가칭 <폭력방지 특별법>을 의원총회에 보고했습니다. 당시 보고된 이 법안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기물을 파손할 경우 최소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일반형법에 우선해서 적용되도록 <특별법>형태로 제정하고 이 법이 통과된 뒤 1년형에 처해진 의원은 자동적으로 의원직을 잃게 됩니다. 한마디로 국회에서 폭력을 쓰려면 1년 이상 징역형을 각오하고 동시에 의원 배지도 내 놓으라는 겁니다. 하지만, 당내에서 조차 너무 가혹하다는 반론이 잇따랐습니다.
결국 오늘(16일) 수정안을 내놨습니다. 형량을 최소 '1년 이상 5년 이하' 이런 식으로 징역형량의 상한선을 정해 형략을 완화시키고 동시에 벌금형 (행위에 따라 천만원 이하 또는 이상)을 같이 넣었습니다. 즉, 국회 기물을 파손하거나 할 경우 1년~5년의 징역형을 받거나 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함으로써 먼저 법안보다는 많이 완화시켰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벌금 5백만원 이상형을 받게 될 경우 의원직을 잃도록 하는 추가 조항을 넣어서, 이 역시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할 경우 의원직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언뜻 보면 국회 폭력을 막을 만한 강도 높은 방책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야당의 저항이나 견제 수단을 완전히 묶어 놓으려는 의도도 포착됩니다. 이렇게 국회 폭력과 야당의 저항을 완전히 차단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면서도 한나라당은 이른바 날치기나 강행처리를 규제하는 법안 제출은 야당의 몫이라며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압도적 다수 여당으로서의 위치만을 고려한 정치 공세라는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민주당의 입장을 보겠습니다. 민주당이 어떻게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하려는지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을 아예 못하게 하는 방안과 직권상정의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하는 두 가지 안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국회 폭력 만큼이나 우리 국회사를 어지럽혀 온 다수당의 '날치기' 관행을 차제에 완전히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당장 다음달 2차 입법전쟁을 앞두고 여당의 강행처리의 첫 수를 차단하겠다는 뜻입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수적으로 크게 열세인 만큼 이런 추진 방안이 법으로 실현될지는 미지수입니다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여야의 대치에 휘말린 법안은 물론 그로 인해 다른 법안들까지도 국회에 계류된 채 빛을 보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여당의 국회 폭력 방지 근절책이나 야당의 직권상정 요건 강화책은 지난 연말과 이달 초 여야 간의 극한 대치만큼이나 서로 정면을 향해 치닫는 폭주 기관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앞서 말씀 드렸듯, 차제에 국회의 그릇된 관행을 바로 잡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지만, 만일 여야가 이처럼 서로 근접할 수 없는 '자기네들만의 논리'를 끝까지 고집한다면 국회 개혁의 숙제는 더 큰 험로로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 시점에서 자유선진당이 제안한 안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8석의 소수 정당으로 여야 대치 때마다 양비론을 펴면서 정치적 입지를 찾아가려 애쓰고 있는 선진당이 내 세운 국회 개혁안은 역시 양측의 입장을 적절히 절충한 실용적 방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진당은 우선, 국회의원이 회의장을 점거하거나 폭력을 행사해 금고형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소속 정당의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도록 했습니다. 1명당 10%씩의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도록 했으니 폭력의원이 10명만 되도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정당의 생명줄이라 할수 있는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는 것을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지만 정치공세적 성격이 아닌 국회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진실성이 느껴집니다. 이와 함께 선진당은 폭력 의원이 금고형 이상의 형을 받게 될 경우 향후 5년간 공직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제한함으로써 당이 지시하더라도 의원 스스로 폭력을 자제하도록 하는 방안을 명시해놨습니다.
선진당은 이와 함께 여당의 독주를 막을 방안도 함께 마련해 놨습니다. 국회의장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 임기가 끝나더라도 5년간 당적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했고,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을 하기 전에 최소한 72시간을 심사 기간으로 두도록 했습니다. 날치기를 막기 위한 방안입니다. 이와 함께 의원 1인당 15분인 발언시간을 60분으로 늘리고 2회인 발언기회를 3회로 늘려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 행위인 필리버스터 제도를 제한적으로 도입하도록 했습니다. 여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할 때 야당이 합법적으로 저항하고 견제할 수 있는 길을 터주자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선진당이 윤리특위의 회의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은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할 개선 방안이라고 봅니다. 밀실 논의는 국회의 모든 폐악의 근원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산결산소위를 비공개함으로써 그동안 여야가 국가 예산을 지역구 나눠먹기 예산으로 뻔뻔스럽게 배분하는 경우가 흔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예산소위를 공개하면서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런 폐단이 상당히 개선됐습니다.
이처럼 지금까지 윤리특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근본적 원인 중 하나는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여당이건 야당이건 솜방망이 처벌 (처벌이라 할 것도 없었지만...)을 뻔뻔스럽게 해왔다는 점입니다. 여당이 야당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하면 야당 역시 여당 의원을 윤리위에 맞제소하면서 결국에는 서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끝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윤리특위를 국회방송을 통해 국민에게 공개하고 과연 어떤 의원이 무엇을 잘못했고, 또 어떤 의원은 상대 당이 일종의 맞불로 세운 볼모 인지를 구분하게 해야 합니다. 공개가 되면 아무리 뻔뻔한 의원이라고 해도 자기 맘대로 국민을 속이기 쉽지 않을 겁니다.
18석의 선진당이 내놓은 이런 방안들이 국회 논의과정에서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이 내놓은 안이나 민주당이 추진하는 안 모두, 자신들이 '평생 여당' 아니면 '평생 야당'이라고 생각하고 내놓은 것이거나 아니면 '나중에 입장 바뀌면 다시 도루묵 하면 되겠지'라면서 당장 다음 달 입법전쟁만을 염두에 둔 꼼수일 것이라는 의혹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때, 선진당이 제시한 안은 분명, 여야 모두 진정 국회의 폭력이나 날치기를 근절하기를 원한다면 여야가 토론의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법안 하나를 놓고도 몇 달씩 대치하거나 볼썽사나운 육탄전을 심심찮게 벌이는 여야가 국회 폭력이나 날치기 근절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자세로 임할지는 의심스럽습니다만, 더 이상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고 미움 받는 국회가 되기 싫다면 적어도 이번 국회개혁 작업만큼은 제발 진지하게 논의하고 충실하게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