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당선된 지 두 달 만인 4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입성했다.
하와이에서 가족과 함께 꿀맛같은 크리스마스.연말 휴가를 지낸 오바마 당선인은 역사적인 대통령 취임식을 의욕에 차 준비해왔으나 이날 워싱턴에 입성한 오바마 측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이날 빌 리처드슨 상무장관 내정자의 입각 철회와 의회의 경기부양 법안 지연 처리 가능성,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등 예기치않은 악재들이 잇따라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와 두 딸은 하루 먼저 워싱턴에 도착, 임시 거처인 헤이-애덤스 호텔에 투숙했으며 오바마 당선인은 이날 오후 워싱턴 근교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 가족과 합류했다.
작년 11월4일 대선 승리 후 오바마 당선인은 경험과 실력을 갖춘 중량급 인사들과 다방면에 걸쳐 참신한 사고를 지닌 전문가들로 차기 행정부의 각료 인선을 차근차근 매듭지으면서 순조롭게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듯 했다.
그러나 자신의 후임 상원의원 지명 문제를 둘러싸고 터진 라드 블라고예비치 일리노이 주지사의 매관매직 스캔들에 자신의 측근인사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뒤이어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리처드슨 상무장관 내정자가 특정기업과의 유착 의혹속에 인준 청문회도 시작하기 전에 낙마, 오바마 측에 적지 않은 타격을 안겨줬다.
오바마 당선인은 5일 의회 지도부와 회동, 최대 1조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하고 차기 행정부의 경제팀과 경기부양책 시행에 관한 의견조율을 나눌 예정이었으나 리처드슨 내정자의 낙마로 경제팀에 큰 구멍이 난 형국이다.
게다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를 비롯해 몇몇 각료 내정자들이 크고 작은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어 앞으로 인준 청문회가 단순한 `통과의례'에 그치지 않고 상당한 출혈을 야기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뉴멕시코 주지사인 리처드슨 내정자가 정치헌금을 대가로 주정부가 발주하는 10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특정업체에 맡겼다는 의혹을 받아 연방 대배심의 조사를 받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오바마 측이 사전에 이를 걸러내지 못한 것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 여타 각료 내정자들 가운데서도 부실한 사전 검증으로 인해 향후 인준 청문회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점이 노출될 개연성이 있다.
이런 가정이 실제화하면 경제회복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짊어진 오바마 정부는 국내외의 엄청난 기대와 달리 정권 출발이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다.
경기부양을 위한 의회의 협조도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수 의석을 점한 민주당은 이달 20일 취임식 이전에 경기부양 법안의 처리를 주장하지만 공화당은 막대한 재정지출의 세부항목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취임식 이전엔 법안 처리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은 여차하면 우보전술을 통해 법안 처리를 몸으로 막겠다는 입장이어서 출범을 앞둔 오바마 정부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이어 지상전 개시로 중동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것 역시 오바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랍권에서는 이스라엘-하마스의 충돌에 관한 오바마 당선인의 침묵 기조에 대해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지만 오바마측은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하고 있다"는 상투적 입장 이외에는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동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경우 오바마 정부 출범에 찬물을 끼얹는 대형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바마 당선인이 워싱턴에 도착한 이날 워싱턴 시당국에서는 아무런 환영행사도 마련하지 않았으며 오바마 스스로도 연설이나 언론과의 접촉도 없이 낮은 자세를 취했다.
임시 거처인 헤이-애덤스 호텔은 전날 낮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는 상태였지만 밤부터는 주변 도로에 철재 바리케이드와 콘크리트 장애물이 설치되는 등 경호요원들에 의해 사실상 봉쇄된 채 특급 경호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호텔주변에는 차기 대통령의 가족이 머무는 숙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관광객들과 현지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날 낮 미셸 여사와 두 딸이 호텔에서 나와 검은 색 SUV 차량을 타고 떠날 때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함께 환호성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