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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처형 2주년…이라크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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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처형당한지 만 2년이 되는 날이다.

후세인의 유해는 티크리트 인근 고향마을 오우자에 안치돼 있지만 추모객들의 발길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거의 끊어져 초라함과 쓸쓸함을 더하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처형 2주년이 지난 지금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극단적인 조치를 서슴지 않았던 전쟁광'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서방에 대항해 아랍의 긍지를 살린 혁명가'로 추항하는 이들도 있다.

1979년 취임 이후 24년간 이라크를 철권통치한 후세인은 미국 침공으로 권좌에서 축출돼 사형에 이르는 등 미국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한 때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수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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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도 미국을 든든한 후원자로 생각한 이라크의 선제공격에 의한 것이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뒤 혁명 수출의 기치를 내건 이란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에 각종 군사정보를 제공하며 지원했다.

그러나 후세인과 미국간 밀월관계는 1991년 걸프전쟁으로 막을 내렸다.

후세인은 석유값 안정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쿠웨이트를 침공해 점령했으나 그의 야심은 미국이 주도한 다국적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좌절됐다.

후세인은 전쟁에는 패배했지만 이란에 이어 이슬람 시아파의 집권을 우려한 서방세계의 암묵적인 비호로 권좌를 유지하게 됐고 이후 강력한 권력을 복원하며 서방과 대립구도를 이어갔다.

2003년 3월 미국은 후세인 정권이 테러조직을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은 결국 같은해 12월 고향인 티크리트 땅꿀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체포됐다.

이라크 시아파 두자일마을 학살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1996년 12월 30일 교수형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후세인이 처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라크의 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누리 알-말리키가 이끄는 이라크 연방 중앙정부는 단일 연방국가로서의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수니-시아-쿠르드간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시아파는 또 반미.친미 세력으로 분열해 다퉜고, 미국의 점령을 거부해온 시아파의 무크타다 알-사드르 진영은 수차례 미국 점령에 항거하는 무력봉기를 주도,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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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전 발발 이후 치안 사정이 가장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자살폭탄테러는 여전히 계속돼 미군과 이라크 정부군 병사 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희생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다음달 31일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지만 수니, 시아 정파 간 갈등을 심화시켜 새로운 분쟁으로 발전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의 폭정은 종식됐지만 후세인 처형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라크의 혼돈 국면이 언제쯤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어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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