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3차요? 요즘에는 엄두도 못 냅니다. 송년 회식 메뉴도 삼겹살을 벗어나지 않습니다"(A은행원)
최근 경제 위기로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은행들이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 식의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여유롭던 은행 문화가 바뀌고 있다.
◇ 줄일 건 다 줄여라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최근 '생활실천 20대 과제'를 선정해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인사 때 '난 안 보내기' 운동, 컬러 프린터를 이용한 문서 출력 하지 않기, 야근을 줄여 야식비와 에너지 절약하기 등이 포함됐다.
국민은행은 또 사내 인트라넷에 비용절감 아이디어 공모방을 개설했다.
공모방에는 "에너지 절약 성과를 영업점 업적 평가 때 반영하자", "문서 출력용지 실명제를 시행하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자" 등의 아이디어들이 올라왔다.
하나은행의 일부 영업점은 고객 연하장을 올해부터 '이메일 연하장'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컴퓨터나 책상 등 사무실 비품을 추가로 신청하면 새것이 아니라 중고품으로 대체해 준다.
심지어 서류를 전달할 때도 급하지 않으면 '퀵 서비스' 대신 우체국 우편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몇몇 지점의 경우 간식비를 줄이려고 일회용 커피믹스나 차류 구매를 자제하고 자신이 집에서 챙겨오도록 하고 있다"며 "한참 영업이 잘 될 때는 주말을 이용해 일본, 홍콩 등으로 단체 야유회를 떠나기도 했지만, 요즘은 가까운 유원지를 찾는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현재 인건비와 물건비를 포함한 총 경비를 올해 계획 대비 10% 정도 덜 지출하고 있으며 업무추진비 등도 10% 이상 감축했다.
우리은행도 11월과 12월 2개월간 본부부서 사업비와 업무추진비를 20% 줄였고 외환은행은 내년에 모든 경비를 항목별로 30~40%씩 줄이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인사때 직원 간 축하 화환을 금지하고 있으며 경영진 취임 때 외부에서 오는 불가피한 화환은 공매를 통해 전액 불우이웃 돕기로 사용하고 있다.
◇ 연말 송년회도 자제…인근 음식점은 울상
은행들은 연말 송년회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신한은행은 경제상황을 감안해 해마다 부서별로 실시하던 송년 모임을 하지 않고 오는 31일 사내방송을 통한 신상훈 은행장의 메시지 전달로 대체할 예정이다.
은행 차원에서 송년회 자제를 권하고 있기도 하지만 은행원들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모 은행의 차장은 "은행원들의 지갑도 얇아져 연말 회식이나 동창회 등의 횟수가 대폭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로 주식이나 펀드 거래 고객들이 대규모 자금손실을 입은 상황에서 은행원이라고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원은 고객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본인이 먼저 펀드에 가입하거나 가족, 친지들의 자금을 펀드로 운영한 사례가 많아 손실 규모가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어떤 직원은 친지로부터 1억 원을 받아 펀드에 넣었다가 반 토막이 나자 자신이 직접 신용대출을 받아 원금을 돌려주기도 했다"며 "지금 회식할 분위기가 나겠느냐"고 반문했다.
은행들이 각종 행사나 회식, 업무추진비 등을 대폭 통제하고 나서면서 은행 본점 인근 음식점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일부 은행은 은행 주변에서 동문회와 향후회, 동기회 등 사적모임도 갖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동의 한 갈비전문점 주인은 "단골이던 인근 은행 직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매상이 급감해 청와대에 민원이라도 넣고 싶은 심정"이라며 "소갈비와 꽃등심 등을 찾는 일본인은 늘었지만 주요 손님인 한국인 수가 급격히 줄었고 간혹 오더라도 돼지갈비 외에는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