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 대통령을 향해 날아간 신발 1켤레가 이라크인들의 반미감정에 불을 댕겼다.
지난 14일 TV기자 문타다르 알-자이디의 신발 투척 사건 이후 이라크의 주요도시에서는 연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알-자이디 기자 석방 촉구 시위지만 성조기가 불타고 부시 대통령의 얼굴 사진이 짓밟히는 등 실제로는 반미시위나 다름없다.
15일 바그다드의 사드르시티를 비롯해 나자프, 바스라 지역 등지에서 모두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고 16일에도 모술, 나시리야, 팔루자 등지에서 수천여 명이 미국과 부시 대통령을 성토했다.
기자의 손을 떠난 신발은 부시 대통령의 머리 위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지만 이라크인들의 반미감정을 표출하게 만든 기폭제가 된 것이다.
이라크인의 반미감정은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점점 커져왔다.
미국 주도의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의 폭정이 종식됐지만 많은 이라크인은 미군을 점령군으로 볼 뿐 해방군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가장 큰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대량 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명분 없는 전쟁이 돼 버린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이라크인들이 겪게 된 피해는 혹독했고 이는 고스란히 반미감정으로 이어졌다.
언론보도를 근거로 민간인 희생자 수를 집계하는 NGO '이라크바디카운트'에 따르면 전쟁 이후 폭력사태로 생목숨을 잃은 민간인은 9만∼9만8천 명에 달한다.
전쟁과 아무 관련 없는 부모, 형제, 자녀가 목숨을 잃는 일을 다반사로 겪는 이라크인들로서는 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분노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치안상태가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수십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자살폭탄 테러는 시장에서, 사원에서, 도로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한 지 5년여가 지난 지금도 이라크 전체 인구의 20%인 470만 명의 전쟁 난민은 시리아, 요르단 등지에서 참혹한 생활을 이어가며 눈물의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라크의 반미감정은 아랍권 다른 국가와 비교해 유난히 강한 편이 아니었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이란은 옛 소련의 지원을 받은 반면 이라크는 암암리에 미국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을 우방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부시 현 대통령의 아버지)는 반(反) 사담 후세인 종파인 이라크 시아파를 설득, 봉기를 일으킬 경우 시아파 정권 수립을 약속했으나 종전 이후 이를 어겼다.
자신들의 숙적인 이란 정권과 같은 종파인 시아파가 이라크 정권을 잡는 것을 우려해 후세인 정권 축출을 포기한 것이다.
권좌를 유지하게 된 후세인은 이후 시아파에 처절한 유혈 보복 참극을 자행했고 이는 이라크 국민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시아파가 미국에 철저하게 등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라크를 '악의축'이라고 규정했던 부시 대통령은 내년 1월 20일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과 함께 역사 속 인물로 사라지겠지만 미국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분노는 이런 이유로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두바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