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냐?"
"태안가고 있어"
"기름유출 1년 맞아 취재하러 가는 거니?"
"아니, 다단계 회사 관련해서 취재하러..."
지난 주 토요일(13일) 충남 태안으로 내려가는 중 걸려 온 전화마다 나온 대화의 일부입니다.
당시는 나름대로 취재보안이라고 지인들에게 말을 얼버무렸지만, 실은 다단계 회사 대표가 중국으로 밀항을 했다는 정보가 입수돼 취재차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전국 피해자 2만5천 명에 피해액 4조 원대의 엄청난 사기행각을 벌이고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다단계업체 '리브' 대표 조희팔(51) 씨. 이 액수가 실제 확정된다면 단군이래 최대 다단계사기라는 지난 2006년 제이유의 피해액 2조 1천억 원의 2배 가까이 됩니다. (별로 좋은 기록은 아니지만--;)
'조희팔 사건'은 조 씨가 지난 2004년 11월 대구에 설립한 의료기기 임대 사업체인 'BMC'에서 시작합니다. 조 씨는 사람들을 상대로 안마기, 골반교정기 등을 한 대당 440만 원에 구입하면 기계를 목욕탕, 찜질방 등에 임대해 주고 임대료를 수익으로 돌려준다는 이론을 내세웠습니다.
8개월 만기로 매일 3만5천 원씩 통장에 넣어 581만 원을 만들어 연리 32%를 보장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은행이자와 비교하면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고, 실제 돈이 정확한 날짜에 입급됐으니 투자자들로서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돈 없는 서민들이야 확정된 고이율에 매일 일정하게 입금되는 돈이 있으니 혹하기 마련이죠. 삽시간에 투자자들이 몰렸습니다. 조 씨는 인천, 부산 등 전국 15개 법인을 세우고 50여개 센터를 설치해 5만여 명의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지역마다 씨엔, 리브, 챌린 등 이름을 바꿔 마치 다른 업체인 것처럼 등록을 했습니다.
5년 동안 지속되던 이 사기행각은 지난 9월 경인, 충청지역 피해자들이 경찰에 진정서를 접수시키면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사업가라고 해도 의료기기 대여로 매년 30%가 넘는 이율을 보장해줄 수는 없었겠죠. 경찰이 파악하기로도 조 씨는 임대 수익을 낸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을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보내주는 '돌려막기'식으로 5년을 끌어 온 것이었습니다.
경찰 수사가 시작돼 지난 달 회사 임원 일부가 경찰에 구속되었지만 조 씨는 이미 전산망을 폐기하고 돈을 챙겨 잠적한 뒤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주 충남 태안해양경찰서에서 조 씨의 밀항을 도와줬다는 일당 7명이 잡혔다는 정보를 사회부에서 입수한 것입니다.
태안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1시 남짓. 우선 해양경찰서를 찾았지만 휴일이어서 수사 관계자도 출근을 안했고 전화 또한 불통이었습니다. 당일 리포트를 하려면 서울까지 올라가는 시간, 막히는 시간을 고려하면 2시30분 안에는 모든 취재가 끝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취재는 안되고 복귀 시간은 다가오고 회사 선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루트를 통해 다른 취재원의 연락처를 받아내 연락했지만 결국 서울로 올라온 뒤에야 전화가 연결돼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결과, 조 씨의 밀항을 도운 혐의로 잡힌 이들은 경찰에서 "'조 사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마약밀수를 한다며 도와달라는 의뢰를 받고 배에 그를 태워 공해상으로 나갔는데 마주 오던 중국어선에 갑자기 '조 사장'이라는 사람이 올라탔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후 이들이 수배전단을 보고 조 씨와 얼굴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태안해경은 현재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경찰청에 통보했고, 대구에서는 최종 확인차원에서 경찰을 급파했습니다.
현재까지 상황은 이렇습니다.
조 씨가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100% 확신은 누구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 상태입니다. 아직 조 씨의 행방은 미궁 속에 있는 겁니다.
몇 년 전 다단계 사기를 수사하던 한 검사는 사무실에 한 할머니가 오셔서 꼬깃꼬깃한 돈을 보여주며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어렵게 모은 것이니 꼭 좀 찾아달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번 다단계 사기 피해자의 70%도 가정주부 입니다. 가족, 친지를 끌여들여 투자 유치한 돈이 10억 원이 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을 담보로 투자한 뒤 실패해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자녀 결혼식 자금을 날린 사람 등 매일 대책자 사무실에 모여 한탄과 후회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조 씨가 밀항했다는 소식에 피해자들은 패닉 상태입니다.
조 씨가 잡힌다고 해서 모든 피해액이 구제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이유 사건에서도 주수도 씨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재까지 피해액 보상은 안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피 같은 돈을 모두 날려 비통해 하고 있을 피해자들과, 외국으로 도피해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사람 생각을 하니 관련 기사를 쓴 당사자로서 조금 더 수사기관이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