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9일) 오후 서울 황학동 중앙시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폭발음이 어찌나 컸던지, 시끄러운 시장 한 가운데서도 '펑'하는 소리가 몇백 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고가 난 곳은 냉동기기 제조업체. 불과 300제곱미터도 안되는 작은 곳이었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가게 안은 각종 기계들과 가스통이 널부러진 채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가게 앞 유리창은 다 깨져 조각조각난 파편이 사방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게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
사고는 인부 세 명이 함께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계를 만드는 도중에 발생했습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계였는데, 냉매제가 부족해 아이스크림이 나오지 않자 냉매인 질소가스를 충전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이 넣는 바람에 기계 안 가스통이 폭발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안에 있던 가스가 폭발하고 가스통이 튀어나가면서 이리저리 파편이 튀었고, 좁은 가게에서 일하던 인부들에게 이 파편이 튀었습니다.
다행히 두 명은 파편이 다리쪽으로 튀어 가벼운 부상을 입는 데 그쳤지만, 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일도 함께 하고 있던 49살 윤 모 씨는 어깨에 파편을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부위가 크다 보니 피가 좀 많이 흘러 나왔고, 결국 출혈과다로 윤 씨는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시신은 바로 근처 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습니다. 동료들과 이웃들, 갑작스런 연락을 받은 친척들이 장례식장으로 하나둘 모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가족들의 말을 들어보니 윤 씨의 가족들이 필리핀에 있기 때문에 연락을 받고서도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윤 씨는 3년 전 아들 셋을 필리핀에 유학보낸 이른바 '기러기 아빠'였습니다.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아내도 함께 필리핀으로 보낸 뒤 혼자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왔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전교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는 잘하는데, 한국에서 학원보내고, 과외보내고.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를 감당하지는 못하겠고, 생활비와 학비가 싼데다, 영어 교육까지 할 수 있는 필리핀으로 세 아들을 보냈던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생활비로 200만 원을 보내주면서, 좀 더 보내주고 싶어 윤 씨는 3년 내내 휴일도 없이 일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이 없을 때는 다른 업체에 가서 일손을 돕고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정작 자신은 좁은 여관방을 전전했습니다. 한 달에 35만 원하는 15제곱미터 남짓한 여관방 한 칸. 그 방 안에 버너를 가져다 놓고 끼니도 대충 때우며 생활했습니다. 제 때 방값을 못내기 일쑤였지만, 가족들 생활비 송금일만은 늦는 법이 없었습니다.
특히 요즘 윤 씨는 더욱 고민이 많았습니다. 필리핀으로 송금할 때는 미 달러화를 이용하는데 요즘 환율이 치솟으면서 똑같은 금액을 보내도 평소의 2/3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입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뒤늦게 빈소에 도착한 아내와 아들들은 윤 씨의 영정사진을 붙잡고 오열했습니다. 그동안 비행기 삯이라도 아껴보겠다고 한국행도 자제하고, 남편이 어떻게 사는지 한 번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내는 "죽어서야 얼굴을 보게됐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못 배워서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아이들만큼은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 아이들만 잘해주면 행복하다"던 남편.
매일 아침 전화통화를 할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하던 남편.
아내는 공항에서 내릴 때 "마치 남편이 마중나왔을 것 같았다"며 "지금이라도 부르면 앞에 나타날 것 같다"고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윤 씨의 장례가 치러지는 날 다음날이 윤 씨의 생일인데, 생일상조차 차려주지 못하게 됐다며 미어지는 가슴을 움켜잡았습니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이 5분만이라도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5분 만이라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이때까지 너무 고생했으니까 하늘나라에서는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있으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아이들 다 잘 키울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더불어 열띤 교육열과 자식사랑에 한 몸 희생하시는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