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저 멀리 남산타워의 빨간 불빛이 깜빡 깜빡거린다. 멀리서 지하철의 규칙적인 기계음이 들려온다. 그리고 잠시 뒤, 가방을 든 연변 처녀가 서울역에 내렸다. 도시는 아직 새벽이다. 서울이라는 동경의 대도시에 첫 발을 내디딘 연변처녀, 그녀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매연으로 가득 찬 희뿌연 하늘도, 도시의 진한 향수 냄새도 모두 그녀가 그렇게도 고대했던 대도시 서울의 냄새다. 순박한 연변 처녀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사회와의 만남,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그렇게 출발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어렵게 취직했다.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는 회사들도 많았다. 신입사원을 뽑더라도 숫자는 예년보다 확, 정말 확 줄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횡행했고 명예퇴직이라는 생소한 단어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됐다. 서민들의 허리는 더 이상 졸라맬 수 없을 정도로 휜 상태였다. 청년실업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은 그 보다 훨씬 뒤인 노무현 정권 시절이지만 이미 그때도 말만 없었을 뿐이지 청년 실업자들이 허다했다. 어렵게 장만한 집은 은행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다시 내놔야 했고 영악한 강남의 투기꾼들은 잽싸게 사들였다. 돈 없는 사람들은 돈 맛을 보기 힘들어 죽어났고, 돈 많은 사람들은 이제야 제대로 돈 맛을 볼 수 있다며 살판났다.
연변 처녀는 그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 아니 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서울에 왔다는 게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뺨을 꼬집는 그녀, 그러나 그녀는 곧 꼬집힌 뺨이 아프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연변에서 온 처녀는 들떠있었다. 약혼자와의 만남, 행복, 풍요, 꿈, 희망. 그녀의 머릿속은 이렇게 기대에 부푼 단어들로 가득 했다. 단 한 번도 그 내면을 만나 보지 못했던 다른 사회와에 대한 동경, 하지만 다른 사회와 첫 대면의 순간 그녀가 그려왔던 환상은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아프락사스처럼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기 시작한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나오는 인물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유일하게 있다면 챨스라고 불리는 철수뿐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는, 굳이 이름으로 부를 필요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연변 처녀는 만나게 된다. 노숙자, 창녀, 걸레, 안경 또는 먹물, 제비 또는 삽살개, 가출소녀, 꼼보 할매. 연변 처녀 그녀도 역시 이름이 없다. 다만 착한 마음 때문에 선녀라고 불린다. 이름 없는 사람과 이름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연변처녀는 이름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름없는 인물의 이름 있는 사회에 대한 동경. 물론 그녀도 이름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그녀가 이름이 있는 존재일 때 비로소 이름 있는 사회는 그녀에게 문을 열어줄 것이다. 결국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환상의 껍질은 필연적으로 깨어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그 환상의 껍질이 깨져가는 과정을 김민기씨는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연변 처녀라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10년 전 우리 사회의 그늘과 소외된 사람들은 순례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진 가출 소녀, 외국인 노동자, 가짜 운동권 학생과 순수한 사랑에 굶주린 창녀, 꾸역꾸역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 매일 매일 단속반과 일전을 벌이며 살아가는 이북 할매. 하지만 작품은 결코 우울하지 않다. 한국 사회 하류 인생의 종합선물세트같은 이 작품을 김민기 씨는 왜 슬프게 그리지 않았을까? 언제가 김민기 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정치적인 것은 관념적인 논리체계가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코드다. 마구 웃다가 웃는 중에 눈물이 나오고, 눈물 흘리다가도 웃을 수 있는 게 우리 생활이다"
<2005년 주간조선과의 인터뷰 중에서>
그렇다. 김민기 씨의 말처럼 지하철1호선을 보는 관객들은 마구 웃는다. '안 넘어가' 회사의 '안 찢어져'고무장갑을 지하철에서 파는 잡화상을 보고 웃고, 사이비 전도사와 수녀와 승려가 다함께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꼼보 할매의 걸쭉한 입담에 웃고 백주 대낮에 펼쳐는 단속반과의 일전을 보면서 배꼽을 쥔다. 그러나 밥벌이의 힘겨움에 허리가 휘어가는, 계단을 오르는 것 마저 힘겨운 싸움처럼 힘든 꼼보 할매가 '산다는 것은 참 좋구나. 아가야'를 노래할 때 관객들은 웃다가 눈물 짓는다.
깊은 밤, 내 온 팔다리가 저려온다.이제 모든 거이 다 끝장 나 버렸나?
뼈 속 깊이 시려오는 이 아픔아하 아직 내가 살았다는 증거이지
자, 싸우러 가자 -한 발짝 씩, 한 발짝 씩,
아주 조금씩만양말 한 짝을 신은 것도 이긴거지
계단 한 칸 올라가는 것도 싸움이지옳지
젊은 놈들한테 또 한 번 이겼구나산다는 게 참 좋구나,
아가야이제 새 날이 시작된 더더욱 좋아
내 맥박은 뛰고 혼백도 살아남산엔 단풍잎이 흐드러졌네
저 한강물 위로 물새가 나르면산다는 게 참 좋구나
이 서울에...말귀를 알아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움직일 수 있고
기대어 설 수만 있다면마지막 가쁜 숨 몰아 쉴 그 순간까지
그래도 살아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거지아 안 그러네? 이 사람들아 -
기분 좋은 온갖 냄새, 아주 작은 소리들지하철 달려가고
어린애들 싸우는 소리거리에 넘쳐나는 다정한 눈빛들
내게 보내는 미소 이게 바로 행복이지산다는 게 참 좋구나,
아가야이제 새 날이 시작된 더더욱 좋아
내 맥박은 뛰고 혼백도 살아남산엔 단풍잎이 흐드러졌네저
한강물 위로 물새가 나르면산다는 게 참 좋구나 이 서울에...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고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랬다. 절망의 순간에도 삶의 끈을 절대 놓치지 않았고, 나락의 상황에서도 내일을 기다렸다.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리던 때, 손바닥만한 양철 빈민촌에서마저 ?겨 나가야만 했던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의 아버지도 그랬다. 재일동포의 소외를 견디지 못하고 아들이 죽고, 결혼한 딸들은 남과 북으로 흩어지고, 정작 이제 두 부부는 앞날을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막막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꼼보 할매의 노랫말처럼, 양철지붕 위로 흐드러지게 내리는 벚꽃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참 기분 조오타. 이런 날은 내일을 믿을 수가 있지. 설령 어제가 어떤 날이였다해도. 내일은 꼭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버지는 눈처럼 내리는 하얀 벚꽃을 맞으며 아내와 함께 리어카를 끌고 멀어져 간다. 마치 저 멀리 조그마한 불빛 하나를 바라보며 가는 나그네처럼.
1994년 초연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지난 15년 동안 우리 사회의 그늘을 비춰왔다. 1996년쯤인가 나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다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 '지하철 1호선'을 만났고, 2003년쯤인가 2000회를 맞아 독일 그립스 극단의 특별 공연을 취재 했다. 그리고 이제 400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릴 '지하철 1호선'을 마지막으로 봤다. 그동안 약 70만명의 관객들이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웃고 울었다. 나도 그 관객들 중 한 명이었다.
서울의 한 복판을 관통하는 '지하철 1호선'은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김민기씨는 10년 전의 상황이 우연히도 다시 재현되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 10년 전 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버전의 '지하철 1호선'을 다시 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떤 형태의 어떤 내용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더라도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그것은 바로 이 사회에 대한 김민기 씨의 따뜻한 시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