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은 농협이 연일 구조조정과 인적쇄신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회장 인사권 제한 등 문제의 핵심은 외면하고 면피성 대책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가락시장 질책' 직후 농협은 각 사업부문 대표 등을 불러모아 6시간여에 걸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금융지주사 도입을 지배구조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부문을 금융지주사와 사업지주사로 떼어내면 자연스럽게 중앙회나 중앙회장의 권한이 축소되고, 각 부문에 대한 영향력도 크게 약해진다는 게 농협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각 지주사와 지주사 대표에 대한 중앙회장의 개입 범위, 인사권을 법과 정관 등 제도를 통해 근본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한, 지주회사 체제만으로 지배구조 개혁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5일 성명을 통해 "농협중앙회가 발표한 지주회사제 도입, 적자 자회사 통폐합 등 구조조정안은 기존 사업을 열거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부정부패를 견제할 수 없는 중앙회장 중심의 지배구조와 어려운 농업 여건을 외면한 방만 경영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농협 지배구조 개혁의 핵심은 중앙회장의 대표이사 추천권이다. 2005년 농협법 개정으로 회장 지위가 비상임직으로 격하됐지만, 농협법 130조에 따라 여전히 회장은 중앙회 전무이사와 신용.경제 등 각 사업 대표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통해 여전히 농협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농민.소비자단체 대표, 학계 전문가, 조합장 등 18명으로 구성된 농협개혁위원회는 지난 7월 제출한 '농협개혁 과제'에서 대표이사 후보 추천권을 회장이 아닌 인사추천위원회에 맡길 것을 건의했다.
농림수산식품부도 이 내용을 지난 9월 농협법 개정안에 담아 입법예고했으나 이후 공청회 과정에서 논란이 일자 관련 조항을 뺀 채 법제처에 넘겼다.
농식품부 실무 관계자는 "농협뿐 아니라 일부 국회의원까지 '선출직인 회장에게 권한을 하나도 안 주면 뭐하러 회장을 뽑느냐'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도저히 원안대로 법 개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협법 개정을 통한 회장의 인사권 박탈이 어렵다면 남은 방법은 농협이 스스로 정관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농협 측은 "신용 부문이 자기 이익만 좇고 농업인 관련 사업 지원을 꺼릴 경우에 대비해 컨트롤 타워로서 사업 부문간 갈등을 조율하도록 회장에게 일정 권한을 줘야 한다"는 논리로 회장 인사권의 제한에 부정적이다.
5일 농협중앙회 이정복 전무, 김경진 경제대표, 남성우 축산대표, 김태영 신용대표, 서인석 조합감사위원장 등 임명직 임원 5명이 중앙회장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도 개혁 본질과는 동떨어진 전시용 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들 가운데 경제대표만 작년 7월 선임돼 임기의 반을 넘겼을 뿐 나머지 4명은 모두 지난 7월 취임 후 근무 기간이 5개월에 불과, 현재의 왜곡된 농협의 지배구조와 비리, 무능에 직접적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