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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 웰메이드 코믹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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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감독: 강형철, 주연: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 12세 관람가)

포스터와 사전 정보만으로 판단했을 때, 차태현의 원맨쇼에 모든 걸 의지하고 무리한 억지 설정에 그 설정을 뛰어넘는 ‘오버’연기로 웃음을 쥐어짜내는 3류 코미디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선입견은 언론 시사전 인터뷰를 할 때까지 계속됐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는 이런 생각이 싹 가시더군요.(안 좋은 영화를 좋다고 과대 포장하는게 아니라 거꾸로 괜찮은 영화를 별로라고 감추는 홍보 전략의 심각한 오류라는 얘기...?) 역시 선입견이란 것이 무척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것이 기발한 착상과 신선한 접근으로 시작해 초반부는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져 뒷수습도 못하는 어정쩡한 한국영화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때 잘 나가던 아이돌 스타였다가 지금은 전성기 인기에 기반해 36살의 중견 연예인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디제이로 활동하는 남현수(차태현)는 벌어놓은 넉넉한 돈으로 싱글의 안락함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취자 게시판에 사연을 남기던 황정남(박보영)과 전화연결을 했는데 이 여인은 20대 초반 미혼모로 애청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던 인물이었죠. 그녀와 어렵사리 전화 연결이 됐는데,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격려해줍니다. 그런데 그게 그만 남현수가 14살때 사고를 저질러 낳았던 딸이었던 것입니다. 그 딸은 또 16살에 일을 저질러 낳은 6살 아들까지 달고 현수의 집에 아예 눌러 앉게 됩니다. 스캔들 한방이면 웬만한 연예인 생명 끝장나는 것은 일도 아닌 시대에 현수는 가슴 졸이며 딸과 손자를 떠안는데 정남은 한 술 더 떠서 가수가 되는게 꿈이라며 현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청취자 가요대결 코너에 출전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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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만 들으면 이런 황당한 설정을 어떻게 풀어갔을까 궁금한데요. 크거나 많은 욕심 부리지 않고 딱 목표한 만큼의 성과를 거둬내는 솜씨가 흠잡을 구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꼼꼼하더군요. 웃겨도 잘 안 웃고 슬퍼도 잘 안 우는, 표현 잘 안 하기로 정평이 자자한 언론 시사회 참석자들을 많이 웃게 만들더군요. 연기자 차태현하면 편안한 용모에 힘뺀 연기로 부담없이 다가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작품을 잘 못 만나면 쥐어 짜내는 코믹 연기로 눈살 찌푸리게 한다는 우려가 있었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적절한 균형을 잡습니다. 자기만 돋보이겠다는 강박을 털어버리고 딸과 손자를 돋보이게 해주겠다는 편안한 자세, 즉 액션보다는 리액션에 정성을 들였습니다. 연기력과 시나리오, 연출력, 세박자가 잘 들어맞은 경우입니다. 이제 정점을 지났지만 여전히 자기가 인기 있을거라고 착각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극중 설정도 현실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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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극이자 코미디 영화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음악영화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정남이 부르는 두 곡의 노래는 감정 전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영화에 쓰인 노래들은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고 [복면달호]에서도 많은 역할을 한 바 있는 차태현이 선곡과 편곡에 깊숙히 관여했다고 하네요.

신인으로 구성한 딸과 손자 역의 박보영과 왕석현도 일종의 모험이었을텐데 성과가 좋습니다..연기 경력이 별로 없는 박보영은 "다른 애들은 사춘기에 반항을 할때 난 그런거 안하고 임신을 했지"하는 엽기적인 대사까지 날리는 4차원적인 요소가 적절하게 섞인 당당한 미혼모를 잘 연기하고, 연기는 처음이라는 왕석현의 아역 연기도 좋은데요. 특히 최대한 어른 연기를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여기는 기존 아역 배우들의 관습적인 연기 방법을 탈피한 시도가 새롭습니다. 여타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역 연기를 볼 때 어른 뺨칠 정도로 능수능란한 연기를 보여주거나 [스타킹]같은 프로그램에서 어른 흉내를 완벽하게 내는 어린이들을 볼 때 징그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던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아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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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 강형철 감독은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끔한 연출력을 보여줍니다. 때깔이 좋은 것은 기본이고 신인 감독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의욕과잉의 함정을 잘 피해나가더군요. 배우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대사도 잘못하면 진부함이나 닭살 돋는 느낌을 잘 피해나가면서 곱씹을 만한 메시지를 얹어줍니다. 차태현은 인터뷰에서 일종의 음악영화로 봐 주기를 바란다고 했고, 감독은 거기에 덧붙여서 성장드라마로 봐도 된다고 하더군요. 개념없는 싱글남이 가족의 의미를 알아가며 성장한다는 의미로 봐야겠죠.

좁고 불편한 좌석(곳곳에 무작위로 배치된 팔걸이 없는 '커플석' 때문에 종종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옷과 살을 맞대고 봐야하는 비극까지 겪어야 하죠.)은 물론 어둑하게 나오는 화면과 원래 음질을 제대로 재현 못하는 시스템으로 유명한 서울극장에서 봤는데도 화면 때깔이 곱고 사운드도 훌륭하더군요.

관객이 즐겁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상업영화'로서 '정교함의 미덕'을 잃지 않았다는 얘기인데 중반에 멜로로 빠지는 부분이나 기승전결에서 전에 해당하는 부분의 갈등이 전체적인 톤에서 조금 쳐지면서 도식적이라는 점만 빼면  [과속스캔들]도 그런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올 겨울 가족, 연인, 친구 등 함께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따질 필요없이 아무하고나 봐도 재미있게 보며 코끝 찡한 감동까지 얹어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극중 하이에나같은 파파라치 옐로우 저널리즘의 피해자가 되는 톱스타 역으로 가수 홍경민이 등장하는데 막판에 잠깐이지만 연예기자를 상대로 유쾌, 상쾌, 통쾌한 복수 액션을 보여줍니다. 남현수의 둘도 없는 친구로 특별출연한 성지루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구요.)

(*사진작가 견습생이자 황정남의 남자친구로 나오는 임지규는 [은하해방전선] 등 독립영화에 주로 출연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같은 또래급 여자에 비해 정신연령 발육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름 '심각한 고뇌'는 상황파악이 전무하고, '의미있는 결단'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며 아무에게도 도움 안되는 짓만 골라서 벌이는 소심한 찌질남 연기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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