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는 명실상부 우리나라 공연예술 1번지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뮤지컬을 보고 그리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공연 소감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실때, 아마 이 때처럼 뿌듯할때도 없죠. 정말 이야기가 꽃을 피우죠. 대학로라는 공간은 그런 것 같습니다. 공연을 매개로 해서 이야기 꽃을 피우게 해 주는 그런 공간 말이죠. 우리의 삶이 너무 바쁘고, 팍팍하고, 메말라 갈수록 더더욱 필요한 공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소중한 공간 '대학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대학로라는 공간을 알게되면 대학로를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도 해 봅니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것은 전과 같지 아니하다"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서서히 암전]
[잔잔한 음악이 들린다]
[음악소리 작아지면서 서서히 밝아진다]
[지하철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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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저녁,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에 넉넉히 맞춰 나는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로 간다. 보라색 줄을 따라 한참을 가다 태극문양 동그라미에서 파란색 줄로 바꿔 타고 내린 곳은, 혜화역 1번 출구. 분주히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들, 그 사이로 어디선가 어묵 국물과 떡볶이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순간 떡볶이 소스를 듬뿍 바른 순대 생각에, 입에서 절로 침이 고인다. 그 군침 돌게 하는 냄새에 끌린 나는 어느새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어묵 하나를 집어 들고 있다.
동숭아트센터나 동그라미 소극장이나 또는 학전블루 쪽으로 가려는 사람들, 아니면 저 멀리 혜화동1번지 소극장 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어묵과 떡볶이 그리고 튀김과 순대라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이 포장마차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지하철 출구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이 포장마차의 위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혜화역 1번 출구, 방식꽃집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대학로 입구에는 저녁이 되면 2대의 전차가 턱하니 지킨다고나 할까. 이렇게 땅거미가 내린 저녁 무렵이면 이 전차에서 발사하는 간장과 고추장 그리고 튀김 냄새들의 무차별 융단 폭격을 피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국자를 든 아주머니의 일사 분란한 지휘아래 어묵과 떡볶이 병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면 적들은 그야말로 맥없이 끌려와 어묵 국물을 홀짝일 수밖에 없다. '컬투요, 컬투요' 저 멀리 등 뒤에서 코미디 공연 관객을 부르는 호객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지금 대학로에 왔다.
대학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132번지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길이 1.55km, 너비 25-40m의 거리.
행정적으로 대학로는 종로 5가에서부터 혜화동 로터리까지 검은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다. 그 대학로에는 자동차와 버스들이 중앙 분리대를 사이에 두고 무심히 달린다. 가끔씩 그 차들이 일렬로 서면, 촘촘히 그어진 굵고 하얀 선 위로 사람들이 파란불 신호에 맞춰 일제히 총총히 오고 간다. 그곳은 네모난 건물들과 네모난 자동차, 그리고 네모난 신호등과 네모난 아스팔트로 구성된 네모반듯한 도로일 뿐이다.
하지만 대학로하면 떠오르는 내 머릿속의 이미지는 그렇게 길이와 넓이로 규정된 아스팔트 거리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대학로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을 중심으로 부채꼴처럼 펼쳐진 그다지 넓지 않은 입체적 공간이다. 그곳에 가면 온통 네모난 것 뿐 인 모난 세상을 둥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아온 삶의 흔적이 있다.
포장마차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고 돌아서자 길 양쪽으로 공연 매표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매표소 앞에는 사람들이 제법 줄을 길게 서 있다. 하지만 맞은편 매표소 앞은 극단 배우들이 나와서 공연을 홍보하는 소리만 왁자지껄하다. 그러다 길가는 젊은 여성들을 붙잡고 공연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별로 신통치 않다. 매표소 모양과 매표소 앞의 풍경, 문득 매표소들이 마치 '여기서부터는 대학로입니다'라고 알리는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처럼 느껴진다. 아니 어쩌면 톨게이트가 맞을지도 모른다. '진짜 대학로'로 들어가려면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처럼 이 매표소에서 돈을 내고 공연 표를 사야만 하니까.
혜화역 1번 출구로부터 시작되는 대학로를 나는 대학로의 옆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혜화역 2번 출구로부터 시작되는 대학로를 '원조 대학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10여 전 대학을 다니던 시절,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약속장소인 대학로라는 곳을 갔다. 그때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가 바로 대학로 'KFC 앞'이었다. 그 뒤 택시를 타고 대학로로 갔을 때, 바로 그때 나는 확신했다.
20대의 나: "아저씨 대학로요"
택시아저씨: "............................"
[붕 -]
[택시 안: 라디오 소리만 들릴 뿐 조용........]
20대의 나: [창문 밖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택시아저씨: "다 왔습니다."
20대의 나: "아, 예" [어리버리한 표정,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준다]
[턱 -]
택시 붕 - 하고 떠난다.
그 때만 해도 아직 서울 길눈이 어두웠던 나는 택시에서 내려 주변을 한번 죽 살펴보려고 고개를 돌리는데.........앗! KFC다. 신기했다. 내가 그냥 대학로가자고만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KFC 앞에 턱하니 내려주다니 놀라웠다. 사실 난 택시 운전사에게 KFC를 말해봤자 헛수고일 것 같아서 대학로 근처에 가서 물어 물어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냥 대학로로 가자고 했는데 이럴 수가! 그때 확신했다, 나는. 대학로하면 'KFC 앞'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나는 나중에 '서울을 잘 아는 친구'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로 KFC하면 다 안다는 것을. 그 뒤로 대학로를 가거나 혹 대학로에서 누구를 만날 일이 생기면, 나는 의례히 KFC 앞으로 갔다. 나에겐 대학로의 기점이었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됐고 그리고 문화부 기자가 됐다. 남들에 비해 대학로를 갈 일이 비교적 많은 나는 대학로를 갈 때마다 KFC 앞을 지나가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안경 쓴 할아버지가 배시시 웃고 있고,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의 가게 앞에서 죽치고 앉아서 친구나 연인을 기다리고 만난다. 대학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KFC 앞은 어쩌면 공식적인 '만남의 장소'다.
KFC 바로 옆에는 똑같이 붉은 벽돌의 샘터파랑새극장 건물이 있다. 하지만 똑같은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인데도 왠지 분위기가 다르다. KFC 건물은 형형색색의 간판으로 붉은 벽돌 건물을 가리고 있지만 샘터 극장 건물은 담쟁이 넝쿨로 붉은 벽돌 건물을 꾸며주고 있다. 이란성 쌍둥이처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 두 건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드디어 내가 말한 '원조 대학로'가 펼쳐진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민들레 영토'를 바라보고 쭉 올라가면 그럴싸해 보이는 식당과 술집들이 나란히 도열해 있고, 그리고 그 사이 사이 골목길 여기저기에 소극장들이 흩어져 있다. 물론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분위기 좋은 카페와 화려한 액세서리 가게와 옷집도 요즘엔 정말 많아졌다.
하지만 대학로라는 공간이 대학로만의 '공간성'을 가질 수 있는 핵심은 바로 소극장들이다. 소극장들이 있기에 술집도 밥집도 카페도 존재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대학로에 소극장들이 없다면, 소극장들은 없고 술집과 밥집과 옷집과 카페만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더 이상 '대학로라는 공간'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대학로는 '대한민국 공연 1번지'로서의 내공을 아직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에는 골목마다 벽을 도배하다시피 붙여진 공연 포스터들을 보기 힘들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대학로 골목은 공연 포스터들로 이뤄진 모자이크였다. 카페 '장'이 있는 골목길이나, 뮤지컬 '신시'극장이었다가 요즘에는 극단 '이다'극장이 들어선 골목길이나, 마로니에 공원 쪽으로 가는 뒷골목길 같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공연 포스터들이 집중적으로 살포된 핵심지역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연 포스터들의 도배는 일종의 선언문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오라! 그대들이여, 이곳은 대학로다! 대한민국의 연극인들이 모여 있는 대학로다!'라고 말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