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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은 또 하나의 암기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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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논술 시즌입니다. 참고로 주요 대학들의 수시 2학기 논술 일정을 정리해볼까요. 먼저 지난 주말인 15일과 16일 성균관대가 자연계와 인문계열로 나뉘어 논술시험을 치렀습니다. 이번주 주말이 시즌 절정인데요, 22일 토요일에 고려대와 서울여대, 연세대, 중앙대 자연계(가나다순)의 논술시험이 있고요, 23일 일요일에는 중앙대 인문계와 한국외대, 한양대 논술시험이 예고돼 있습니다. 다음주 목요일인 27일 서울대의 특기자 전형 인문계 논술이, 토요일인 29일 경기대, 서강대, 아주대 논술시험이 이어집니다. 30일 일요일에는 인하대가 논술우수자 전형을 위한 논술시험을 실시합니다.

이런 논술시험을 대비하는 수험생들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 시내 유명학원의 논술 특강반을 찾아가봤습니다.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만, 지난해에 비해서는 20% 이상 줄었다는군요. 아무래도 올 정시에 주요 대학들이 논술전형을 빼버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대학 입장에서는 품이 많이 들어가면서 명확한 잣대를 두기 힘들어 뒷말을 낳을 수 있는 논술전형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서울대를 비롯한 이른바 잘 나가는 대학들은 여전히 논술시험을 보는데다 수시에서는 오히려 논술이 강화된 측면도 있어 여전히 수험생들에게무시하기 어려운 전형요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참관한 일주일 논술 특강 코스 수강생들은 수능이다, 학기말 고사다 이어지는 시험으로 지쳐버린 몸을 추스리며 7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논술을 완벽하게 준비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학력고사만 치고 나면 지옥에서 풀려났듯이 활개를 쳤던 제 입시 시절과 비교하면 안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런데 논술 특강의 수업 모습을 보며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저는 논술 공부니 만큼 주어진 논제에서 핵심 주제를 잡는 법, 관련 자료를 이용해 논거를 전개해나가는 방법, 자신의 결론과 견해를 명확히 피력하는 방법 등등을 배우리라 생각했는데 수업의 80~90%가 생물이나 화학 등 과학 지식과 수학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제가 참관한 수업은 자연계 논술반이었습니다) 얼핏 봐서는 수능 준비 강의라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이유는 이렇더군요. 최근 논술시험의 유형은 단순히 학생들의 문장 구사력이나 종합적 사고력, 창의적인 문제 능력 등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목에 걸친 통섭적인 학문적 지식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충분한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지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합니다. 특히 수학적인 풀이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고 합니다. 지난해 서울대 자연계열 논술의 경우 아주 어려운 수학시험을 방불케 했다는군요. 저도 지난해 기출문제와 올해 각 대학의 모의시험 문제를 살펴봤는데요, 솔직히 말해 문제 자체를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제가 인문계 출신이기 때문이도 하겠습니다만 대단히 수준 높은 과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하면 문제를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논술 특강이 과학, 수학, 사회 과목 공부 시간이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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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통합교과형 논술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교육 당국이 또다른 본고사가 된다며 강력히 막아오던 것을 지난해 일부 허용했고 올해는 사실상 완전히 자율화했습니다. 교육 당국이 우려했던 만큼 본고사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선 학교 현장에서 이런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해서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수능 주요 과목인 국, 영, 수만 매달리는 학생들에게 과목의 영역을 떠나 통섭적이고 종합적인 공부를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과학이나 사회 전반에 대해 폭넓고 광범위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 단순히 지식을 읽고 암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지식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체계화해 실제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보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학생과 교사들은 현재 논술시험에 대해, 앞날에 대해 걱정이 많았습니다. 최근의 논술 추세 때문입니다. 논술마저도 영, 수 위주로 수렴된다는 우려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서울대가 대놓고 수학문제를 낸 것을 비롯해 올해 고려대 모의 논술은 물론 실제 경희대와 숙명여대의 수시 인문계 논술까지 수학적 풀이 과정을 요구했습니다. 단순히 논지의 전개에서 수학적 방식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수학적 정답이 있는 문제를 출제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외대는 영어 지문을 출제했고요. 따라서 그저 논술이 더 어려운 수학, 영어 시험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죠. 이런 식이라면 앞서 열거한 논술시험의 교육적 장점들은 없어지거나 적어도 매우 희박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학들이 왜 논술시험을 이런 방향으로 몰고갈까요? 학교 선생님들은 '변별'에만 몰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종이 한장 차이라도 좀더 지식을 많이 갖춘 학생, 영어·수학을 잘하는 학생을 뽑겠다는 의욕이 앞서다보니 논술시험이 고교 교육에 미칠 영향은 안중에 없다고 꼬집습니다. 대학들은 이렇게 변명하겠죠. 수학은 논리적 사고의 기본이요, 밑바탕이며 영어적 능력은 세계화 시대에 학문적 성과를 올리기 위한 기초적인 도구라고. 따라서 이런 과목의 능력이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능력은 수능에서, 내신 성적에서 충분히 검증하고 구별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논술은 그에 더불어 학생의 세계관과 학문을 대하는 태도, 습득한 지식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현실에 접목하려는지에 대한 열정, 나아가 인성까지 보는 도구로 삼으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런 덕목들도 학문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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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한 논술 강사가 제게 현재의 논술시험을 잘보기 위한 비법을 살짝 털어놨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출문제와 각 대학이 내놓은 모의 논술시험 문제에다 그 대학 해당과 주요 교수님들의 대학 교양 교과서를 잘 뜯어보면 대략 어떤 주제가 출제될 지 감을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예상되는 출제 주제들에 대해 열 서너가지 정도의 모범 답안을 미리 작성하고는 그 답을 좔좔 외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와 비슷하게 출제되면 외운 답안을 기초로 논술시험을 푼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이러더군요. "그 짧은 시간안에 그런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문제지를 받은 뒤에 이해하고 방향을 잡고, 논지들을 정리하고 답변을 써나갑니까? 불가능합니다. 또 그렇게 급하게 정리한 답안과 미리 정리해놓은 답안을 읽은 교수님들이 어느쪽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할까요? 논술을 잘 본 학생들은 다 그렇게 준비합니다." 이쯤되면 논술도 암기과목이라 해야겠군요. 그것도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준비하기 어려운 과목 말입니다. 아니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그 교육 자체가 학생들의 학문적 소양을 키우고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대학에 가서 배워야 할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지문 빨리 독해하는 요령을 배우고 모범 답안을 외우는 공부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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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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