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게 몰아쳤던 펀드투자 광풍의 후유증으로 펀드시장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투자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작년 말 수조 원이 몰렸던 인기 펀드들을 비롯해 국내외 주식형펀드들은 예외없이 반토막이 났지만 원금회복 전망은 불투명하다.
운용사나 판매사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와 맞물린 펀드붐에 휩쓸려 투자자들은 펀드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이 너도나도 '묻지마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 증시 폭락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관련 분쟁과 소송이 줄을 이으면서 펀드시장이 사상 초유의 `소송대란'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 펀드붐이 광풍으로 = 펀드 열풍의 시작은 IT 버블 붕괴 후 5년여에 걸쳐 이뤄진 국내 증시의 대세상승이 시작되던 20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저금리와 맞물려 유동성은 풍부했으나 코스피지수는 500선 부근에 머물러 주식 투자의 매력이 어느때보다 높았고, 사회적으로는 인구 고령화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되던 때였다.
이런 가운데 랜드마크자산운용(현 ING자산운용)에서 출시한 '1억만들기펀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3억만들기펀드' 시리즈 등으로 이어지면서 적립식펀드 붐의 불을 지폈고, 2005년 코스피지수가 1,000선을 넘어서자 거치식 목돈까지 끌어들이면서 펀드 투자의 열기가 고조됐다.
2006년 잠시 주춤하는 듯하던 펀드 열풍은 2007년 들어 해외펀드로까지 옮겨붙으면서 '광풍'으로 돌변했으며,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 2,000선을 돌파한 작년 10월과 11월 최고조에 달했다.
작년 한해 동안 국내외 주식형펀드로는 67조원이 쏟아져 들아왔는데 이 중 3분의 1인 23조원이 이 무렵에 집중됐다.
이에 따라 주식형펀드의 순자산총액은 2004년 초 9조2천억원에서 작년 11월 초엔 15배인 140조원까지 불어났다.
당시 은행 창구엔 결혼자금에 노후자금, 모아뒀던 적금까지 털어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몰려든 투자자들로 장사진을 이뤘으며, 과열 우려에도 운용사와 판매사들은 강도 높은 마케팅으로 '묻지마 투자'를 부추겼다.
특히 작년 6월 환율 방어를 목적으로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를 도입한 정부 당국은 펀드 광풍을 낳는 데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펀드 투자 열기는 해외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서 수익률이 하락하던 올해 상반기까지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확산과 함께 국내외 증시가 폭락하면서 펀드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펀드평가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주식형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은 14일 기준으로 -42.81%로 추락했고, 해외주식형펀드는 이보다 더 심한 수렁에 빠져들어 무려 -53.49% 기록 중이다. 그나마 폭락했던 증시가 반등하면서 지난달 말 각각 -53.22%와 -62.26%까지 추락했던 데서 반등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올해 들어서만 주식형펀드는 해외주식형 34조원, 국내주식형 29조원 등 총 63조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 펀드분쟁의 불씨 '불완전판매' = 펀드투자의 대규모 손실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에서 촉발돼 지구촌으로 확산된 금융위기가 주원인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해외 악재가 여과없이 국내 투자자들에게 천문학적 손실을 입힌 것은 투자 위험을 제대로 따져보지 못하도록 만든 '묻지마 투자'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당시 투자자들 중에는 펀드를 은행 예금처럼 원금이 보장되는 금융상품인 줄 알고 가입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최근 들어 각종 파생상품펀드를 비롯해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펀드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펀드'라는 이름이 붙은 금융상품은 운용 결과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고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는 '실적배당' 상품이라는 점에선 동일하다.
따라서 원금 보장이 안 되는 것은 물론 투자자가 자기 책임하에서 투자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특히 일반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거래하는 주식형펀드는 운용 자금의 6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은 만큼 손실 위험도 크다.
하지만 적립식투자의 확산과 함께 은행 창구에서 펀드에 가입하는 투자자들이 급속히 늘었고, 이는 투자 위험이 큰 주식형펀드를 예금 상품과 혼동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통상 어떤 경로로 펀드에 가입하던 판매사는 투자자에게 투자위험이나 운용방법, 환매조건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해주고 투자설명서와 약관 등을 교부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투자자는 자필서명 등을 통해 설명을 듣고 설명서도 교부받았다는 것을 확인해주게 된다.
하지만 작년 말 인기몰이를 했던 펀드들은 대부분 줄을 서서 가입할 정도였던 탓에 차분한 설명이나 투자설명서를 확인하는 일은 뒷전이었다. 심지어 차분한 설명을 요구하는 투자자는 뒷줄에 있는 다른 투자자들의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이런 모습들은 지금와서 결국 펀드 관련 분쟁과 소송을 불러오는 불씨가 됐다.
◇ 줄잇는 펀드소송…수수료 인하 = 최근 펀드 손실이 급격히 확대되자 판매사나 운용사가 잘못된 혹은 불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며 소송을 내는 투자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는 분쟁조정 신청이 줄을 잇고 있으며, 변호사 사무실에는 펀드 소송 관련 문의가 쇄도하고, 인터넷 사이트엔 공동소송을 위한 피해자 모임 카페가 앞다퉈 개설되고 있다.
최근 파생상품펀드 관련 분쟁에서 금융당국이 판매사인 우리은행에 불완전판매의 책임이 있다며 손실액의 50%를 배상하라는 조정 결정을 내리자 펀드소송은 더욱 확산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펀드 손실이 커진 데는 판매사나 운용사의 책임이 적지 않다고 해도, 도의적 차원의 책임만으론 투자 손실을 보상받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투자손실을 배상받으려면 불완전판매 등 판매사나 운용사에 명백한 잘못이 있음을 법률적으로 입증해야만 하는 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투자자들의 무분별한 소송이 위기에 처한 펀드시장과 금융산업을 더욱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반토막 난 펀드들이 속출하는 데도 운용사와 판매사들이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겨가는 데 대한 비난여론이 고조되면서 금융당국 주도로 펀드 수수료를 인하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투자자가 펀드 관리의 대가로 투자자는 운용사나 판매사 등에 국내주식형펀드는 평균 연 1.99%, 해외주식형펀드는 연 2.15% 수준의 수수료(총보수)를 내야하는데, 이 중 판매사에 주는 판매보수가 3분의2, 운용사가 챙겨가는 운용보수가 3분의1 가량을 차지한다.
특히 은행과 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들은 특별한 사후 서비스도 없이 판매보수를 매년 챙겼다는 비판속에 200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약 6조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