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레이스가 본격화된 후 후보별 지지도 조사에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버락 오바마 당선인을 앞질렀던 것은 딱 두 차례 있었다.
한번은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은 직후, 여성과 백인 노동자층 등 힐러리의 골수지지자들이 오바마가 아닌 매케인 지지로 돌아서면서다.
나머지 한 번은 8월말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러닝메이트를 발표하면서다.
전국 정치무대에서 무명과 다름없었던 40대 '하키맘'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면서 일기 시작한 '페일린 돌풍'을 문자그대로 선풍적이었다.
"무모한 도박"이라고 혹평했던 공화당의 원로들조차 참패로 끝날 것 같았던 이번 대선에서 페일린의 등장으로 매케인-페일린의 지지율이 급등,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이 엿보이자 한껏 고무됐다.
페일린의 대권 레이스 데뷔는 충격의 연속이었고 그 반향도 대단했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부통령 후보로 깜짝 발표된 페일린은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전 시장, 미트 롬니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쟁쟁한 부통령 후보군들 사이에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아 `다크호스'라는 표현조차도 어울리지 않았다.
8월 29일 오하이오 데이턴의 유세장에 처음 소개된 페일린은 남편과 자녀를 줄줄이 이끌고 무대에 등장했다.
이후 언론은 다운증후군을 보이는 그녀의 생후 4개월된 둘째 아들과 이라크 파병을 앞둔 장남, 스노보빌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인 남편, 고교생으로 임신 5개월째인 큰딸 등 그녀 주변에서 쏟아지는 숱한 화제에 주목했다.
페일린의 이런 가족사는 보통의 미국민 가정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의 축소판이었고, 이런 평범한 가족을 꾸려가는 범상치 않은 여걸의 이미지는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알래스카에서 시의원, 시장, 주지사를 역임하면서 보여준 개혁의 성과물들과 공화당내 부패 정치세력과 일전을 불사한 매버릭(이단아) 이미지는 보수주의자들이 찾아낸 공화당의 `오바마'로 여겨졌다.
유세장마다 `새라, 새라'를 연호하는 청중들의 고함에 매케인의 존재는 오히려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부시 행정부의 8년 집권에 낙담한 유권자들을 다시 공화당의 깃발 아래 모을 수 있는 등대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페일린 돌풍이 사라지는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금융위기의 발발로 여론의 관심이 경제쪽으로 확 쏠린데다, 페일린 주변의 좋지 않은 스캔들과 약점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주지사 재임중 휘두른 인사전횡이 언론매체에 경쟁적으로 다뤄진데다 방송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대외정책을 비롯한 각종 현안에 대한 그녀의 인식과 식견은 실망스런 수준을 넘어 부통령 자격에 대한 심각한 의구심으로 비화했다.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도 페일린이 유사시 대통령직을 대행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 페일린의 외모를 꾸미는데 15만달러의 비용을 지출했다는 뉴스는 여성정치인에게는 가혹한 비난이라는 동정론도 없지 않았지만 지지율 급락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경제위기 속에 지지율 하락으로 대선 승리 가능성이 엷어지자 매케인-페일린 캠프내에서 자중지란 양상마저 노출됐다.
페일린이 부시 행정부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자 공화당 수뇌부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으며 매케인측의 선거전략가들은 독불장군식의 행보를 보이는 페일린을 향해 2012년 차기대권을 노리고 있다며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등 `네탓' 공방도 이어졌다.
매케인 본인은 끝까지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삼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며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며 페일린을 감쌌지만, 선거전 막판에 나온 여론조사들은 페일린이 매케인에게 플러스 효과보다는 표를 갉아먹는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민주당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버락 오바마에게 고배를 든데 따라 여성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해 공화당의 러닝메이트로 페일린이 지명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매케인측이 간과한 점은 힐러리가 지닌 풍부한 정치적 자산이 페일린에게는 극히 빈약했다는 사실이다.
짧은 기간에 정치판에서 인기의 부침을 경험한 페일린이 차기를 도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결과로 그녀는 1984년 민주당의 제럴딘 페라로에 이어 두번째로 여성부통령 후보로 이름을 남기는데 만족하고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가 됐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