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여의도 정 반장] 아, 김민석!


구글 선호 소스에 SBS뉴스 추가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정치부 정반장, 정준형 기자입니다.

11월이 됐습니다. 올해 달력도 앞으로 달랑 한장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가는구나하는 생각에, 아침에 거울을 봤더니 안보이던 흰머리가 몇개 생겼더군요. 세월이란게 이렇게 가는가 봅니다.

오늘은 최근 검찰의 표적사정 논란과 관련해 논란의 한 가운데 서있는 정치인이죠,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하 김민석 최고 또는 김최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광고
광고 영역

김민석 최고는 올해 44살에 불과하지만, 그 누구보다 부침을 거듭하며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살아왔습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대표적 386세대 정치인으로, 촉망받던 차세대 정치인에서 한순간의 선택으로 철새정치인으로 낙힌 찍히는 바람에 정치적으로 좌절해야했던 비운의 정치인!

그런 그가 지난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극적으로 부활에 성공하는듯 했습니다만, 또다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정치생명이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김민석 최고에 대한 세인의 평가를 보면 아쉬움과 비난이 교차하는 듯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며, 기자로서 김민석 최고의 정치역정을 옆에서 지켜본 저 역시, 그의 지금 상황을 바라보며 사람의 인생이란게 무얼까하는 생각들을 해보게 됩니다.

제가 김민석 최고를 알게된 것은 13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해 첫 민선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가 치러졌고, 저는 당시 옛 민주당의 조순 서울시장 후보를 담당하는 취재기자였습니다. 김 최고는 당시 조순 후보 캠프에서 기획전략을 맡아 활약했고, 선거운동 기간동안 인터뷰를 포함해 여러차례 취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가 보여줬던 논리정연한 말과 명석함에 "아, 이 사람이 말로만 듣던 김민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똑똑한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이른바 "잘난 체"하는 법도 없이 사람에 대한 예의도 깍듯해서 첫인상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처음봤던 그가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32살의 나이로 최연소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인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민석 최고와 다시 만난 것은 2000년입니다. 제가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옛 민주당의 막내 기자로 배치돼 일하면서, 16대 재선에 성공한 김최고와 자연스레 기자와 취재원의 사이로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 그는 여세를 몰아 청년대표로 당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고, 국제적인 차세대 정치지도자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은 물론 세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광고
광고 영역

그 당시 함께 취재하던 다른 언론사 기자 몇몇과 어울려 김최고와 두세차례 술자리를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1년 민주당 쇄신 파문 당시 그의 선택은 전도양양했던 그의 정치인생에 서서히 어두운 먹구름을 몰고 왔습니다. 당시 동교동계 핵심이었던 권노갑 고문을 향해 정동영 의원이 "권노갑 퇴진"을 요구하며 민주당의 인적쇄신을 요구했고, 상당수 소장개혁파 의원들이 정동영 의원을 지지했습니다. 결국 권노갑 고문이 2선으로 물러나면서 정동영 의원은 일약 대권주자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김민석 최고는 소장 개혁파 의원들 편에 가담하지 않고 당 주류측 편에 서서, 이른바 '질서있는 쇄신'을 주장하면서 소장개혁파 의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2002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이상수 의원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38살이란 나이로 후보로 선출됐을 때, 그의 정치인생을 절정을 향해 치닫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패한 뒤, 이내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가 제기됐을때, 그는 후보단일화를 반드시 이루겠다며 민주당을 탈당하고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 21로 이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론은 노무현 후보를 배신했다며,그를 '철새정치인'으로 낙인찍었고, 막판 정몽준 의원의 지지철회로 대선공조가 파기되면서 그의 정치생명도 끝나는 듯 했습니다.

16대 대선 다음날 나왔던 신문의 사진 한장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한 스포츠 신문이었는데, 1면에 김민석 의원의 상반신에 날개를 단 대형 합성사진을 싣고 "김민석 새 됐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또 대선이 끝나고 2003년 여름 여의도의 한 맥주집에서 다른 일행과 함께 술을 마시던김 최고를 우연히 만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세인들의 평을 의식한 듯 기운이 빠져 보이던 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후 김 최고는 옛민주당에 복당해 재기를 노렸지만, 17대 총선에서 탄핵역풍에 밀려 낙선했고, 서울시장 후보시절 SK그룹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 들어 노무현대통령의 측근들을 포함한  386세대 정치인들이 승승장구할 때, 그는 정치무대 뒷켠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 해외 유학생활을 하며 권토중래를 모색해오다, 지난 4월 18대 총선을 통해 정치에 복귀하려했지만, 이번에는 당시 박재승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내세운 비리·부정전력자 일괄배제 원칙에 따라 공천에서 탈락했습니다.

광고
광고 영역

하지만 지난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화려한 부활'의 날개짓을 펼쳐보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8월과 올해 2월 지인인 사업가 2명으로부터 4억5천만원을 받아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또다시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됐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자신이 받은 돈이 순수한 목적의 후원금이거나 개인적 채무라고 주장하며 당당하게 법원 영장실질심사에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만, 민주당측이 야당탄압이 명백한 만큼 영장심사를 거부하기로 당론을 정하면서 10월 31일 오전부터 당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4억5천만원이라는 거액을 받았다는 점에서 잘잘못을 떠나 국민 정서가 그에게 얼마나 동정적일지 모르겠습니다.  여론의 흐름이 그의 앞으로 정치인생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386세대 대표적 정치인으로 차세대 지도자로 떠올랐던 한 정치인이 십여년의 세월동안 모진 부침을 겪다가, 지금은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의 차가운 바닥에 앉아 검찰 수사에 맞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의 정치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김민석 최고위원을 바라보는 눈길은 여전히 양갈랩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이후 고난을 겪어볼 만큼 겪어봤으니 이제는 훌훌털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한다는 시각과 여전히 철새정치인 이미지를 잊지 못한 분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민석 최고위원을 바라보면 안타깝습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에 대해 막판에 공개적 지지를 철회하며 변절했던 당사자인 정몽준 의원은 지금 별다른 비난을 받지않고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서 당당히 활동하며,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중요한 정치적 고비에서 한 정치인이 택한 순간의 선택과 결정이 남은 정치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김민석 최고를 통해 배우게 됐다고 할까요.

제가 김민석 최고위원에 대해 글을 쓴 것은 그를 옹호하자고 쓴 게 결코 아닙니다.

그와의 인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지난 세월을 되새겨가며 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김민석 최고의 정치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결국 정치인 김민석의 남은 정치인생은 민주당도 검찰도 아닌, 국민이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편집자주] 90년대 SBS 사회부의 민완기자였던 정준형 기자는 법조팀과 경제부 등을 거쳐, 사회부 사건팀을 이끄는 시경 캡을 역임한 뒤 지금은 정치부 야당팀의 현장반장으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때론 거칠면서도 정이 듬뿍 넘치는 인간미가 담긴 뜨끈뜨끈한 기사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