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잡(감독: 로저 도널드슨, 주연: 제이슨 스타뎀, 새프런 버로즈, 15세 관람가)
은행강도하면 범죄 스릴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소재인데요. 그 수법의 기발함이나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마조마해하는 스릴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이 강도들 편에 서서 그들의 한탕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뱅크잡]은 평범한 은행강도 영화와는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는 은행강도 행각의 스릴을 느낄 수 있고 후반부는 얽히고 섥힌 관련 인물들간의 대결 구도가 볼만합니다.
1971년 런던의 중고차 매매상 테리(제이슨 스타뎀)은 끌어다 쓴 사채 갚을 일이 막막합니다. 한때 알고 지내던 전직 모델 마틴이 찾아와 경보장치 교체를 위해 주말에 경보가 해제되는 로이드 은행의 대여금고를 털자고 제안합니다. 사채업자의 지긋지긋한 추심행위에 넌더리치던 테리는 다종 다양한 각계 전문가는 물론 얼치기들까지 불러모아 작전에 돌입합니다. 근처 건물 옥상에서 망 보는 동료와 연락할때 사용하는 무전 내용을 아마추어 무선사가 우연히 듣고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은 어떤 은행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앰뷸런스를 이용하는 장면에서 긴박감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런던의 상류층들이 숨겨놓은 금은 보화에 ‘사랑의 빤쓰’까지 줄줄이 털어내는데 성공하는데 문제는 마틴이 돈과 귀금속 보다는 특정 금고에 있던 사진에 관심이 있다는 거죠. 그녀의 애인인 정보기관 MI5의 중견간부가 이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거죠. 그 역시 최고 책임자로부터 승진을 미끼로 이 일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조직인의 비애가 느껴지는 장면이더군요. 그 사진은 만약 공개된다면 영국 왕실이 휘청거릴 정도로 파괴력이 있는 것으로 공주의 방탕한 성생활을 담은 것인데 사진의 소유주는 납치 협박을 일삼는 ‘마이클 X’라는 짝퉁 말콤엑스 같은 흑인 무슬림으로 경찰에 체포됐지만 이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무죄방면되고 해외로 도피해 있는 상태입니다.
테리 일당이 훔친 물건은 이것뿐이 아니라 귀족출신 의원의 변태스런 매음굴 행각을 담은 사진과 유흥업 종사자가 부패 경찰들 수백명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한 내용을 꼼꼼하게 적어논 ‘떡값 리스트’까지 있습니다. 후반부에는 이들 물건들과 얽히고 ?鰕? 인물들이 테리를 찾아내 물건을 되찾고 제거하려고 혈안이 됩니다. 하지만 테리는 물건의 폭발력을 거꾸로 이용해 그들을 하나씩 조율하려 합니다.
번듯한 옷차림에 고급스런 용어를 사용하는 상류층 사람들이 결국 추악한 음모를 진행하는데 구역질을 느끼다가 허둥대는 장면에서는 묘한 쾌감이 느껴집니다. 변태스런 사진으로 곤경에 처한 귀족 노인네는 ‘2차 대전 이후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 운운하며 여유까지 부리니까요. [뱅크잡]은 과도한 폭력이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빠른 속도감과 재치있는 구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입니다.
(* 이번 주에는 무려 10편의 영화가 개봉됐는데요.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파리 삼총사의 달나라 여행을 다룬 3D 입체 애니메이션으로 자녀들과 보면 딱 좋을 가족영화입니다. [피아노의 숲]과 [굿, 바이]는 잔잔한 일본영화이구요. [마이 쎄시 걸]은 한국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인데 미국에서는 극장 개봉을 안하고 곧바로 DVD로 출시됐다고 하더군요. [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는 어디서 본듯한 포스터 비주얼의 강렬함과 영화의 허접함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