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빨간 넥타이'의 위력


구글 선호 소스에 SBS뉴스 추가

한승수 국무총리가 오늘(28일) 당초 예정에 없던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를 전격 방문했다. 국제 금융위기 여파로 증시가 연일 폭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보니,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를 다시 한번 전달하기 위해서다.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대통령까지 나서서 시장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의지를 거듭 천명했는데도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는데, 총리가 나선다고 뭐 달라질 것는 없었다.

한 총리는 오전 11시 증권선물거래소를 방문해 이정환 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부터 국내외 증시상황을 보고 받고 증권사와 자산운용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증권시장에도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해 나갈 것이며, 1천억 달러 규모의 은행 대외채무 지급 보증안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적극 협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뒤, "경제주체들도 합심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위로했다. 그리고는 방명록에 雨過天晴(우과천청: 비온 뒤에 하늘이 갠다)라고 쓴 뒤 거래소를 나왔다.

그런데 정말, 한 총리의 주문이 통했던 걸까? 한 총리가 거래소 방문을 마치고 돌아난 뒤, 900선마저 위협하던 증시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한때 1000선도 넘어섰다가 999로 마감했다. 증시가 다시 상승한 데는 분명 다른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됐건 "총리가 다녀간 뒤 증시가 좋아졌다"는 말이 오늘 객장에 나돌면서 총리 방문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됐다.

사실 한총리는 오늘 거래소 방문에 앞서 수행원들에게 모두 빨간 넥타이를 매라고 지시했다. 마치 가뭄에 기우제라도 지내는 심정으로 증시상승을 기원하는 차원에서였다는게 총리실측 설명이다. 아무튼 빨간 넥타이는 오늘 큰 위력을 발휘했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지난 번 한 총리의 독도방문이 떠올랐다. 7월쯤인가, 한일간 독도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때 한 총리는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48년 정부수립 이후 총리가 독도를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토록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건만, 정작 총리가 우리 땅을 한번도 밟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할 정도였다. 사실 총리급 이상에서 독도방문 계획은 여러 차례 있었던 것 같지만 그때마다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해 모두들 일부러 방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광고
광고 영역

그래서인지 한 총리가 독도를 방문한다고 했을 때, 일부에서는 괜한 분란만 더 일으키는 일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총리가 얼굴 한번 낼려고 사진 찍으러 간다는 혹평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당시 총리의 독도방문은 다음날 한일 언론의 1면 기사를 장식했고, 이후 한일간 독도 영유권 분쟁을 가라앉게 만드는 분수령 역할을 했다.

두 사건 모두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하지만 기자는 70살 넘은 노인의 노회(老獪)한 예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괜찮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누구도 믿지 않는 요즘, 총리의 우스꽝스런 빨간 넥타이에 오늘 하루 모두가 웃었다. 그리고 그런 웃음들이 불황의 긴 터널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편집자주] 정치부에서 국무총리실을 출입하고 있는 권태훈 기자는 1994년 SBS에 입사해 사회, 정치 분야 등에서 폭넓은 시각의 기사들을 써왔습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에는 서울대 교수직을 둘러싼 금품수수 관행을 정면 고발하는 특종기사로 대학가와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