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허물어진 국가간 장벽을 가볍게, 그리고 중세를 휩쓴 흑사병처럼 빠르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신흥국가들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신흥국가들에서 두번째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행한 국가들 사이에 'SOUTH KOREA'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를 예측한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한국이 신흥국가들 중에 가장 공격받기 쉬운 상태라고 경고했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과 브라질 등으로 확산된 위기가 충격적이라며 앞으로 닥칠 위기에 비하면 11년 전 외환위기는 바닷가를 거니는 정도의 한가로운 것이었을 뿐이라고 평가했으며, 대표적인 아시아권 금융시장의 평론가인 윌리엄 페섹은 한국정부가 한가롭게 외신의 칼럼에 대해 불평이나 늘어놓을 때가 아니라고 일침을 놨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외신에서 쏟아지는 위기진단에 대해 '주가 폭락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국민의 미래자산인 연기금을 주식시장에 마구 투하하는 도박을 감행하고 있는 경제정책 당국자들의 무능과 위기의 심각성을 따져보는 글을 한 번 써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우선 금융위기와 연관된 외교정책의 실패를 한 번 따져 볼까 합니다.
1. '버르장머리'와 'IMF'의 추억
지난 1995년 11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당시 역사왜곡과 관련된 일본정치인들의 잇단 망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일본측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으며 건국 이래 30여 차례 계속되고 있어 이번에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겠다고 생각했다"
한 나라의 국가정상이 상대방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비외교적 언사는 일파만파의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파문이 일면서 우익들을 중심으로 김 대통령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까지 했으니까요.하지만 당시 언론과 대다수 국민들은 별 문제의식없이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가뜩이나 심상치 않던 한일관계는 이 때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다시 꽁꽁 얼어붙었고, 이런 한일관계 경색은 김영삼 정권 말기까지 지속됐습니다. 그런데 '버르장머리'의 역효과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 정부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97년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면서 종금사들이 넘어지고 은행과 기업들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정부는 일본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하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한 번 당해 보란듯이 한국에 투자된 자금들을 무차별적으로 회수해 가기 시작합니다. 국내 유동성 위기와 맞물린 일본의 자금회수는 한국경제를 IMF 구제금융의 수렁에 몰아넣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2. 좌충우돌 실용외교와 금융위기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실용외교 노선을 앞세우면서 전통적인 한미동맹 '복원'- 저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이 정부 관계자들은 이 표현이 그렇게 좋은 모양입니다"-과 미래지향적 대일외교 노선을 표방합니다. 그리고 취임직후인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해 미래지향적 관계구축과 정상간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합니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 등으로 경색된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입장변화는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실용외교 노선은 지난 7월 일본이 중학교 역사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고 나서자 180도 얼굴을 바꿔 버렸습니다. 국내적으로 쇠고기 문제 등으로 사면초가에 놓였던 이명박 정부는 국민여론 악화를 우려해 주일대사 소환을 포함한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사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대사소환이라니 한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일본 내 반응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 후 몇 달동안 실제로 한일관계는 극도로 경색됐고, 예정됐던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도 일정 조차 잡지 못하는 파행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 기자의 눈길을 끈 한 칼럼 기사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극우신문인 '산케이'에 실린 일본 방위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기고한 칼럼이었는 데, 일본 극우진영의 입장을 고려하고 보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섬뜩한 협박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협박은 묘하게도 지금의 한국 경제 상황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듭니다.
"<한국은 대가가 크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 - 다케사다 히데시
"이명박 정권은 (한승수)총리의 다케시마 상륙을 포함해 이전 정권이 하지 않았던 '일선(一線)'을 넘고 말았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의 '나홀로 씨름'을 일본 국민들이 놀라움 속에 지켜보고 있다."
일본측은 한국의 대응에 말로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지만, 한국측의 고조되는 분위기가 멈추지 않을 경우 일본측도 지금까지 독도 문제에 대해 보여온 냉정함을 잃게될 수도 있다. 한국의 대외채무가 늘어나고 외환보유고는 줄어들고 있다. 장래에 다시 금융위기에 빠져들 것이란 공포도 나오고 있다. 그때 일본측이 긴급융자를 해 줄 필요성도 나올 것이나, 일본 국민들이 과연 그렇게 하도록 할 지... 다케시마 문제를 에스칼레이트시킴으로써 한국측이 받게될 대가가 크다는 사실을 깊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그리고 지난 9월과 10월, 은행을 중심으로 한 한국 금융권의 대외지불능력이 의심받기 시작하면서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위기 국면이 본격화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한중일 금융정상회담을 제안하고 800억 달러 규모의 기금 창설을 추진하고 나섭니다.
물론 일본은 과거사와 영토문제에 있어서 어떤 인식의 변화도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스스로 내건 대화의 전제조건을 거둬 들였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대응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일본의 냉소적 시각은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습니다.
3. 금융위기... 밑천을 드러낸 한국외교에 '조롱'이 쏟아지다
최근 우리 정부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G20 정상회의에 포함되기 위해 필사의 외교적 노력을 펼쳤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며 위기가 기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연장선에서 역사문제에 있어 일본의 인식변화가 있을 때까지 없을 것이라던 한-일 정상회담이 지난 주 아셈정상회의 기간에 슬그머니 개최됐습니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위기 앞에 밑바닥을 드러낸 한국외교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최근 조선일보에 실렸던 일본이 대표적인 한국경제 전문가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의 칼럼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제목 : <아이슬란드의 교훈>
.... 중략 ....
아이슬란드 위기는 두 가지 점에서 시사적이다.
첫째는 기축(基軸)통화국이 아닌 소국의 안이한 금융입국 전략에는 큰 리스크가 동반한다는 점이다. 금융서비스가 국경을 넘어서 신용이 신기술에 의해 무한하게 팽창하는 반면, 최종적인 신용 공급자는 여전히 국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아무리 순식간에 정보가 온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시대가 되고 글로벌화가 진전돼도 지정학(地政學)이 없어지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특히 위기 때는 주변 국가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진다.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가맹국이면서도 유럽에 의존할 수 없게 되자 미국 아닌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구미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성과를 자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중·일 정상회담을 제창했음에도 불구, '독도(다케시마) 문제'가 불거지자 올 가을 예정돼 있던 첫 한·중·일 정상회담의 참가를 주저해왔다. 정치와 경제협력의 분리를 재삼 요청하는 일본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닥쳐오자 다시 한·중·일 회담 개최와 아시아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협정의 확대를 일본에 요구하고 있다. 한·일 관계와 비교해 일·중 관계는 훨씬 심각한 문제를 많이 안고 있지만 그래도 이해가 일치되는 정·경 분리 원칙에서는 일관성이 있다. 반면 일·중 관계가 다소 개선된 현재 일본인에게는 한국의 일관성의 결여가 인상깊게 다가온다.
'제2의 아이슬란드'는 아니라 하더라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은 소중하다. 위기의 시대, 우리는 모두 배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후카카와 교수는 점잖케 표현하기는 했으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을 '일관성의 결여가 인상깊게 다가온다'고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우리 모두는 배워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며 제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좀 보라고 짐짓 근엄하게 충고까지 곁들이고 있습니다.
후카카와 교수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통한 일관성있는 대외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대목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또 하나의 진정한 교훈은 집안 단속 잘못하면 외교정책 역시 일관성을 잃고 자존심 구겨가며 표류할 수 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건설을 이유로 국권과 인권이 유린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나 충분한 보상없이 몇 억 달러의 대일청구권과 맞바꾼 역사가 그랬고,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던 일본에게 제발 도와달라며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야 했던 아픈 기억이 또한 그렇습니다.
그리고 2008년, 위기에 빠진 한국이 어쩔수 없이 내민 선린의 손길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일본에게 우리는 어떤 외교정책으로 답해 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역설적으로 '외교'가 아니라 '경제'에 있습니다.
그리고 밑빠진 독이 된 경제시스템을 놓고 밑을 떼울 생각은 없이 유동성을 동원해 무차별적으로 물만 퍼붓는 한심한 대책을 반복하는 정부를 보면 다시 대일외교의 치욕스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섭니다.
[편집자주] 정치부에서 외교부를 맡고 있는 윤창현 기자는 1996년 SBS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아침뉴스인 '모닝와이드' 경제코너에서 오랫동안 시청자들을 만났습니다. 시사고발프로인 '뉴스추적'에서는 우리 법조계의 문제점을 심도있게 파헤친 <전직교수 김명호..그는 왜 법을 쐈나?>편으로 2007년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