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에서 한 남성의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또 다시 고시원의 열악한 환경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사상자 중 상당수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근근이 생활해온 중국동포 여성들로 밝혀지면서 중국 동포사회가 다시 한번 술렁이고 있다.
◇ "불나면 다 죽는다" = 국가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4년 간 고시원 생활을 해왔다는 A(32) 씨는 "항상 불이 나면 죽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해야했다"며 고시원 생활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A씨는 "인근 고시원에서 실제 화재가 난 적이 있는데 불이 난 곳이 출입구 근처다보니 겁을 집어먹은 한 여학생이 3층에서 뛰어내려 발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A씨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아니면 모두가 전세금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살면서도 불안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최근 서울 시내 고시원 3천45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지역 고시원 이용자 10명 중 6명(57%)은 회사원, 무직자, 단순 노무직 등 숙박형 직군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회사원은 2만6천86명(24.1%), 무직자 2만2천237명(20.5%), 단순 노무자1만3천755명(12.7%)로 각각 집계됐다.
고시원의 이용요금은 지역, 방크기, 위치별로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가장 싼 곳이 월 10만원 안팎, 평균 20만원 정도다.
상대적으로 값싼 숙박료는 점점 많은 서민들이 고시원을 숙박시설로 이용하고 있는 이유다.
◇ 화재 막을 방법 없나 = 고시원 화재가 자주 대형 인명사고로 연결되는 것은 6㎡ 남짓한 `쪽방'들이 다닥다닥 벌집처럼 연결돼 화재에 취약한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수원시 M고시원 화재(4명 사망), 2007년 잠실동 N고시텔 화재(8명 사망), 지난 7월 용인 고시원 화재(7명 사망) 등 불만 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진 것도 이처럼 화재에 취약한 구조에 기인한다.
한 고시원생은 "요즘은 고시원 내에 소화기 등이 잘 구비돼 있지만 복도가 너무 좁아 비상구에서 멀리 있는 방에 사는 사람들은 불이 나면 빠져나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방당국에 따르면 현재 고시원을 관리하는 관련 행정부서는 전무할 뿐 아니라 관련 법규도 미비한 상황이다.
특히 고시원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있다보니 거의 신고만 하면 영업을 할 수 있어 지금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한 소방 관계자는 "소방서에 화재안전장비에 대해 점검을 맡고 사업자등록증을 당국에 제출하면 고시원을 운영할 수 있다"며 "관련 법규가 빨리 마련돼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고시원을 공부방보다는 숙박시설로 이용하고 있는 만큼 관계기관으로부터 숙박시설에 준하는 엄격한 관리를 받아야한다고 많은 소방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숙박시설로 분류되거나 그에 준하는 규제를 받을 경우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구비해야하고 대피로도 설치해야 해 화재로 인한 사고는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 중국동포 잇단 참사에 `아연' = 이날 발생한 화재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 상당수가 강남 등지의 식당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며 `코리안드림'을 꿈꿔온 중국동포 여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동포 사회는 다시 한번 울음바다가 됐다.
외국인노동자, 특히 중국동포들이 화재로 인해 집단으로 숨진 것은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지난 1월 발생한 이천 화재 참사 때 중국동포 10여 명이 숨졌으며 이에 앞서 작년 2월 여수화재참사 때도 중국동포를 포함해 외국인노동자 10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돕고 있는 김해성 목사는 "무척 슬픈 소식"이라며 "관련 소식을 접한 중국동포들은 현재 충격에 휩싸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목사는 "오늘 발생한 사건처럼 `묻지마식 폭력'으로부터 외국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해야한다"며 "정부는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처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