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겠지만 송승환 씨는 여덟 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한 이래 근 40년 동안 광고, 드라마, 라디오, 영화계를 주유해왔으니 인터뷰에는 '달인' 정도가 아니라 입신의 경지에 올라도 올랐겠지요.('개콘'의 달인은 끽해야 십 몇 년 아닙니까)
"인터뷰는 섹스다"
전설의 여기자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인터뷰 전문기자 오리아나 팔라치는 말했습니다.등소평, 호메이니, 키신저 등등 글로벌하고도 히스토릭한 인물과 맞짱을 떠서 유명해지신 분의 말이니 새겨들을만 하겠지요?
송승환 씨와 인터뷰를 마친 뒤 불현듯 그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아, 오늘의 섹스는 어떤 섹스였을까'
저는 인터뷰할 때 순발력을 믿기보다는 사전 준비를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이미 나온 인터뷰 기사가 있으면 정독하고, 관련 자료들도 잘 챙겨 읽은 뒤 질문지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세우지요. 일종의 섀도우 복싱 같은 건데, '내가 이 질문을 했을 때 저 쪽에서 저렇게 대답하면 나는 이렇게 물어봐야지'하며 마음 속에서 연습을 하는겁니다.
인터뷰는 기본적으로 ① 질문을 하고 ② 답변을 듣는 동시에 다음 질문을 생각하고 ③ 동시에 인터뷰가 의도했던대로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지 점검해 시나리오를 수정해가면서 ④ 제한시간과 장소 등 환경적인 제약을 끊임없이 의식해야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설렁설렁 나섰다가는 그렇고 그런 얘기만 받아적고 나오게 됩니다.
게다가 ENG카메라로 촬영하는 방송 인터뷰는 여기에 더해 ① 인터뷰이를 카메라 앞에서 편안하게 느끼도록 해줘야하고 ② 표정, 말투, 몸짓 등등도 제대로 찍히고 있는지 계속 의식해야하며(인터뷰어도 찍힐 경우는×2) ③ 뉴스에 쓸 수 있는 인터뷰 장면은 한정적이므로 '내 머릿 속의 초시계'를 계속 돌리고 있어야합니다. ④ 여기에 장소의 제약이 심하기 때문에 주위의 눈도 무시할 수 없죠.
그래도 방송기자로 십 몇 년을 밥벌이했기 때문에 지금은 비교적 편안하게 인터뷰에 집중할 수 있지만 송승환 씨처럼 언론 노출이 빈번했던 인터뷰 도사를 만나면 긴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수만난 거지요.
제 블로그에 언제가 썼는데 한 때는 '인터뷰가 전부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터뷰에 재미도 느끼고 그 중요성을 절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노력도 했었습니다. 그 때는 처음 만난 상대도 내가 준비만 잘 해서 근사하고 도전적인 질문, 남들이 못하는 질문을 던지면 인터뷰를 멋지게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멋진 답변을 할 수 밖에 없는 멋진 질문을 던지리라' 하고 생각하며 전투에, 아니 섹스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침대에 앉아 담배를 피며^^ '이 인터뷰가 무슨 인터뷰였을까'생각하게 됐습니다. 인터뷰가 섹스라면, 섹스에는 원 나잇 스탠드도 있고, 사랑으로 충만한 섹스도 있고,그냥 이도 저도 섹스도 있을텐데 오늘 것은 무엇이었을까"하고 말이지요.
사실 어제 섹스는 지지부진했습니다. 섹스는 혼자 하는게 아니 것은 분명하지만, 인터뷰어가 부진한데 인터뷰이가 열낼 일은 없겠죠. (갑작스런 인터뷰에 응하고 친절하게 인터뷰해주신 송대표님께는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그동안 멋진 인터뷰였다.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일부는 혹시 원 나잇 스탠드가 아니었을까', '서로가 인생을 한번도 겹쳐보지 않은 사람사이에 충만한 인터뷰란게 과연 가능할까하고 말이죠.
노련한 인터뷰이는 자신이 내보이고 싶은 것만 내보입니다. 그 인터뷰의 성격을 파악한 뒤 맞춤형 답변을 내놓는거죠. 그걸 탓할 것도 못됩니다. 믿을 수 없는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은 엎지러진 물과도 같으니까요.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인터뷰는 섹스다. 내가 벗지 않는 한 상대방도 벗지 않는다"
어제 제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건 제가 벗지 않아서일까요? 근데 처음 만난 상대 앞에서 어떻게 벗나요? 나이를 먹으면 부끄럼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실제로 좀 그렇게 돼가는 것도 같은데, 인터뷰어로만 치면 이제 거꾸로 부끄럼을 알아가는 단계에 와있으니, 아직도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편집자주] 날카로운 문화적 감각과 통찰력이 묻어나는 인상깊은 칼럼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주형 기자는 199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와 SBS스페셜 등 호흡이 긴 기사와 방송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