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소득 직불금을 부당수령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공무원 4만 명을 포함해 의사, 변호사등 28만 명에 이른다는 감사원 감사결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직불금 수령자 가운데는 고위공직자 3명이 추가로 확인되고, 급기야 국회의원들까지 명단에 오르내리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현 정부를 압박할 새로운 호재를 만나듯 국정조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부당하게 집행된 직불금은 모두 환수 조치해야 한다"며 "하지만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는 곤란하다"며 사태수습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언론사들도 경쟁적으로 고위공직자나 청와대 관계자들의 토지대장을 뒤지며 마치 보물찾기 하듯 명단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물론 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준비한 돈인 만큼 나름대로 먹고 살만한 사람이 이 돈을 가져갔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28만에 가까운 국민을 한꺼번에 파렴치범으로 몰아가게 만든 '쌀소득보전 직불금'은 과연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에 대한 책임은 왜 아무도 묻지 않는가? 기자는 이번 일이 마치 길거리에 돈을 뿌려놓고 '농촌에 사는 사람만 가져가라'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야바위 놀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뒤늦게 "도둑 잡아라" 야단법석이다.
쌀소득보전 직불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허술하기 그지없다. 정부는 지난 2004년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WTO 규정에 따라 추곡수매제 같은 사실상의 농가보조금제를 더 이상 운용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당시 농가소득을 보전할 겸, 논농사 축소도 유도할 겸해서 1ha(약 3,000평)당 연간 60만 원을 보상해 주는 직불금제를 도입하게 된다. 보상대상은 98년부터 2000년 말까지 논농사에 사용된 농지다. 해당 농지에 대한 전매제한도 없고, 초기에 있었던 4ha의 지급 상한제도 나중에 폐지됐다.
현행법은 일부 예외규정은 있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 즉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런데 시행규칙인 농림사업시행지침에는 이장 등 마을대표의 경작확인서만 있으면 누구나 농민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장이 누군가? 마을의 대표지만, 한사람의 인간이다. 확인서에 도장을 찍어줬다고 해서 아무런 불이익이 없는데, 사돈의 팔촌이라도 부탁을 뿌리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기 싫으면 농지를 사서 소작농에게 임대해 주고 비료를 샀다거나 수매에 응한 자료가 있거나, 1년에 90일 이상만 논에 나가봤다는 증거 즉, 경영에 참여했다는 증거만 있어도 농민자격이 주어진다. 바쁜 고위공무원이 어떻게 농민이 될 수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주말에 그냥 가서 둘러보고 오더라도 1년 52주니까 100일이 넘는다. 경작확인서도 필요없다는 뜻이다.
결론은 누구나 농민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돈만 있으면 직불금이 지급되는 농지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곳이 나중에 아파트 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합법적인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그렇게 돈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농민들 돕기위해 나눠주는 직불금을 왜 챙기냐고 묻는다면, 이 또한 허술한 법 때문이다. 조세제한특례법은 8년이상 자경한 사람에게 양도소득세를 면제해 주는데, 직불금을 받아야 자경 농업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뿌려진 주인 없는 돈을 줍지 않는 것은 양심의 문제다. 하지만 농민 흉내만 내도 가져갈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유혹에 빠뜨리는 일종의 범죄행위다. 양심을 버린 부당 수령자도 찾아내야겠지만 허술한 법을 만들어 국민들을 혼란속에 몰아넣은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도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편집자주] 정치부에서 국무총리실을 출입하고 있는 권태훈 기자는 1994년 SBS에 입사해 사회, 정치 분야 등에서 폭넓은 시각의 기사들을 써왔습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에는 서울대 교수직을 둘러싼 금품수수 관행을 정면 고발하는 특종기사로 대학가와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