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고 있다. 세계적인 공조의 힘이 발휘되면서 붕괴위기에 직면했던 금융시스템은 다시 새살이 돋아나는 분위기다. 우리 금융시장도 4일 연속 환율이 하락하고, 이틀 연속 주가가 급등하면서 이제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위안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10월은 괜찮을 것 같은데 11월이 걱정이라고 말한다. 각국의 대대적인 달러 공급 대책으로 일단 금융시장의 붕괴 위기는 넘겼지만, 불안한 외환시장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11월 결산기가 되면 모든 금융기관이 장부를 정리하게 되고, 이때는 차입여건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외환시장의 불안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금융기관이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부실덩어리를 드러낼 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환율이 상승하면서 경상수지는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고, 주가는 이제 바닥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이탈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불안하다.
달러부족 사태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갈수록 심해지는 금융권의 자금난과 상승하는 이자율, 떨어지는 집값에 중산층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해외펀드에서는 55조 원의 손실을 보지 않았는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한국에 대해 'Sinking Feeling'(침몰하는 느낌)이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실어 눈에 띤다. 신문 한 면을 가득채운 FT의 기사는 가계부채는 늘어나고, 은행의 자금난은 확대되고, 서툰 외환정책으로 원화가치는 떨어지고, 해외에 자녀를 유학 보낸 부모들은 환율상승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위기가 자산 가치 하락을 초래하면 또 다른 기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기회가 오기까지는 엄청난 고통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즉각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우리 중산층이 느끼는 불안감은 부인할 수가 없다.
미국 발 세계적 금융위기는 이제 한 숨을 놓은 듯하다. 그러나 시스템 위기는 극복했지만 그 기저에 남아 있는 부실화된 가계, 부실화된 기업의 치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돈을 벌어 엄청나게 불어난 빚을 갚아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적어도 앞으로 3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덜 쓰고 더 벌어 빚을 갚아야 하는데, 세계 경제를 이끌던 미국이 덜 쓰면 세계적인 총수요는 감소하고 미국으로의 수출은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중국으로의 수출 가운데 많은 부분이 다시 미국으로 수출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의 4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경제에의 파급효과는 클 수밖에 없다.
어제 기자가 인터뷰한 미국의 리처드 레빈 예일대 총장은 미국의 위기는 너무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라면서 부동산에서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기업 등 다른 부문에서 터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는 오고야 말 위기였다는 얘기다.
외환위기의 극복에 한국이 GDP의 40%, 태국이 35%를 투입해야 했음을 감안할 때 미국의 이번 위기 극복에는 미국 GDP의 25%인 3조5천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모두들 빚을 줄이고, 아끼고 절약하면서 구조조정 하는 마음으로 기본에 충실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미국 금융위기의 본질은 '버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썼다'는 것이다.
[편집자주] SBS 보도국 경제부의 수석 차장으로 현재 정책.금융팀을 이끌고 있는 김용철 기자는 1991년부터 현장에서 활약한 최고참급 기자입니다. 경제 분야의 오랜 취재경험과 폭넓은 인맥으로 전문성을 자랑하는 김 기자는 지난 2005년에는 시사고발프로 '뉴스추적'에서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의 해외도피 행적을 끈질기게 추적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