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위기 '광풍' 속에 사회 전반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18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의 초반 성적표가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회가 12일로 국감 전체 일정의 3분의 1을 소화했지만, 일부 국감 현장에서의 고성과 감정적 대치, 파행을 제외하고는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각 당의 돋보이는 팀플레이는 온데 간데 없을 뿐만 아니라 패기의 초선 의원과 군계일학의 국감 스타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집권 여당이라는 프리미엄과 172석이라는 과반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국감을 주도해야 할 민주당 등 야권은 이렇다할 `야성'(野性)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묻혀 '빅이슈' 실종 =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는 국감에 대한 무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번 국감에서 YTN 사태를 고리로 한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 탤런트 최진실씨의 사망을 계기로 재점화된 사이버 모욕죄, '특권층 봐주기' 논란을 수반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 등 굵직한 이슈들이 나왔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1천400원을 넘나들고 코스피지수가 장중 1천200선이 붕괴되는 등 좀처럼 호전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현 경제상황은 주요 이슈에 대한 논쟁 자체를 잠재우는 상황이다.
또한 정치권 스스로도 대형 이슈 만들기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나라당은 `정책국감'이라는 명분 아래 새 화두를 던지기 주저하고 있고, 민주당도 기존에 형성된 전선에만 몰두하는 분위기다.
경제위기라는 대형 악재 속에서 새로운 문제제기가 쉽사리 부각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자칫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작용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경제위기에 따른 `신경과민'은 국감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표출되고 있다.
한 여당 관계자가 "정책 및 이슈의 본질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가고 오히려 장관들의 답변 태도를 문제삼거나 정치적 이슈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게 많다"는 말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여야 '스타'가 없다 = 의원들에게 국감은 '스타'로 발돋움하는 무대다.
국감 부활 첫해인 1988년 13대 국회 당시 노무현(통일민주당), 이해찬(평민당), 이상수(평민당) 의원은 '노동위 3총사'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대여 전선의 첨병 역할로 국감스타가 됐다.
이어 15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김홍신 의원이 태반 불법유통을 문제삼아 보건복지 분야에서 스타의원으로 군림했고, 김형오 국회의장도 1998년 불법감청 및 도청문제 국감 최대 이슈로 부각시켰다.
이밖에 역대 국회에서는 국감 기간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메가톤급 이슈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의 초반 무대에서 국감스타와 저격수, 빅이슈는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쯤 최소 1∼2명의 국감스타가 탄생,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한 야당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국감스타, 빅이슈의 부재는 투명해진 정치.사회적 환경과 국회 및 시민단체의 상시 감시기능 작동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야 공수 전환이 된 첫해인 데다, 장기간의 쇠고기 정국에 따른 부실한 국감 준비, 초선을 중심으로 한 의원들의 비판력 부재 등이 '맥빠진' 국감으로 이어졌다는 관측도 있다.
◇파행·구태 여전 = 이번 국감에서도 여야간 신경전과 공방으로 인한 파행과 구태는 여전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는 파행으로 얼룩졌다.
지난 7일 한국관광공사 등에 대한 국감은 YTN의 노조원 집단 해고와 관련, 민주당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한나라당과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들만 참석한 반쪽 국감이 돼버렸다.
9일 국감에서는 인터넷언론의 생중계 문제로 초반부터 삐거덕거리더니 이례적으로 경찰병력이 배치된 것과 관련해서도 민주당 의원들이 강하게 항의하면서 파행을 되풀이했다.
같은날 지식경제위원회의 한국산업단지공단 국감에서는 민주당 최철국 의원의 지적에 불만을 품은 공단 임원이 담뱃갑을 집어던지고 협박을 하는 등 '난동'을 부려 국감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선거비 의혹 논란이 핫이슈로 부각된 교육과학기술위도 파행을 비켜가지 못했다. 한나라당 의원이 공 교육감에게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지 말라"고 한 부분에 야당 의원들이 사과를 요구하면서 여야가 공방을 벌이다 결국 파행을 겪었다.
일부 의원들이 일방적인 몰아붙이기식 질의와 일부 정부기관 인사들의 불성실한 답변 태도도 이번 국감에서 나타나는 등 구태도 여전했다. 물론 여야 의원들간의 고성이 오간 것은 다반사였다.
◇지도부·중진 '노련미' 과시 = 여야 지도부와 중진들은 지휘자 역할을 맡으면서도 관록을 바탕으로 해당 상임위에서 제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홍준표 원내대표는 국방위에서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면서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로서 여야간 갈등이 극에 치닫던 문방위 국감장을 찾아 야당 의원들과 접촉하는 등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외교통상통일위 위원으로서 100%의 출석률을 보이며 성실성을 보였고, 보건복지가족위 박근혜 전 대표는 꼬박꼬박 국감장을 찾아 `정책질의'에 몰두하고 있으며 외통위원인 정몽준 최고위원은 꾸준한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정세균 대표가 국감에 빠짐없이 참석, 특유의 논리력으로 현안을 파헤치면서도 시간을 내 국감 상황과 당무를 챙기는 부지런함을 보이고 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국감을 진두지휘하면서도 환경노동위 국감에 빠짐없이 참석, 원숙미로 수적 열세를 극복하는데 앞장서고 있고 5선인 김영진 의원도 교육위에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을 몰아붙이며 저력을 발휘했다.
외통위원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젊은 의원들을 뺨치는 공격력을 보이며 김하중 통일부 장관을 궁지에 몰아넣어 눈길을 끌었다.
(서울=연합뉴스)